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구십칠 Feb 25. 2024

P의 SONY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P는 음악 감상 기기의 흥망성쇠를 인생 전체에 걸쳐 농밀하게 경험한 그런 세대였다.

지금이야 음악 감상만을 위한 기기라는 것이 조금 생경한 존재, 혹은 힙스터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버렸지만 P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좋았던 음악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자면 여러 가지 형태의 기기들이 함께 따라 오르는 것이었다.


첫 기억은 전축이었다. 전축이란 것은 LP를 틀 수 있는 턴테이블, 주파수를 잡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대형 스피커가 합쳐진 커다란 덩치의 음악 감상 기기이다. 당시 P의 아버지는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커다란 전축과 수십 장의 LP를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이따금 P와 P의 누나에게 들려주곤 하였다. P는 심장이 울릴 정도로 '둥둥둥' 크게 울리는 전축 소리가 너무 과하게 느껴져 아버지와 함께하는 음악 감상 시간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좋든 싫든 전축이 P의 첫 음악에 대한 추억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P를 음악에 제대로 빠져들게 만들어 준 것은 Sony의 워크맨이었다. P가 초등학생, 그리고 중학생 초 무렵일 때에는 카세트테이프의 호황기였다. 건드리기 예민해 보이고 어디에서 파는지도 알기 어려웠던 LP에 비해 카세트테이프는 그 당시의 P와 같은 어린아이들도 쉽게 접근 가능한 것이었다. 학교 앞 허름한 문방구에만 가도 그 당시의 인기가수나 잘 모르지만 왠지 멋져 보이는 외국 가수들의 테이프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불법 유통 테이프도 꽤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새로운 테이프를 구해 Sony의 워크맨에 장전하듯 끼워놓고 버튼을 누르면 딸깍하는 기분 좋은 파열음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P는 야자 시간이면 늘 교복 안쪽으로 이어폰을 넣고 목깃으로 빼어내어 귀에 꽂은 다음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음악에 빠져들었다.


카세트테이프 다음은 CD플레이어의 시대였다. CD플레이어의 시대에도 P는 여전히 학생 신분이었기에 테이프보다 곱절은 비싼 CD가 부담스러웠다. P를 포함한 반의 대부분이 친구들이 여전히 워크맨에 머물러 있을 때 CD플레이어로 갈아탄 친구들은 소수였다. 그래서 부족한 용돈을 모으고 모아 Sony의 CD플레이어를 손에 넣었을 때 P는 거의 처음으로 소유에 의한 우월감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특별히 섬세하지 못한 P의 귀엔 테이프와 CD의 음질 차이가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CD의 시대 이후엔 LP, 테이프, CD 같이 음악을 담아놓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엇이 사라졌다. 그저 MP3라는 기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이질적인 음악 파일만이 존재했다. 소리바다 같은 사이트에서 손쉽게 원하는 음악을 검색해 다운로드하고 PC의 스피커나 MP3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 안으로 복붙하면 그만이었다. (MP3 시대 초창기에는) 돈도 들지 않았고 원하는 음악을 손에 넣기도 허무하리만큼 쉬워졌지만 P는 왜인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원하는 테이프를 손에 넣기 위해 아등바등 용돈을 모았던 기억, 얼마 되지 않는 테이프 더미 사이에서 보물을 찾아냈던 기억, 늘어난 테이프를 되살려보겠다고 맥가이버가 되었던 기억. 그 쓸모없는 행위의 기억들이 만들어낸 공백이 P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MP3의 시대 이후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가상으로 나마 소유할 수 있는 파일 형태조차 사라지고 스트리밍이라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화를 하는 전화기로 음악을 듣는다. 참 이상한 시대다.


P가 음악을 가장 좋아했던 시절은 아무래도 카세트테이프의 시대였다. 아버지가 아닌 스스로 음악을 골라 들으며 처음 취향이라는 게 생기기도 했고 그 시절 P의 손에 늘 들려있었던 워크맨과 끈끈한 유대를 형성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P와 같은 올드보이들은 소니라는 브랜드 하면 이 워크맨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소니라는 브랜드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첫 번째 제품이었으니까.


요즘 친구들은 아마도 소니 하면 플레이스테이션을 떠올리겠지 싶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기 중 하나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그다음 세대는 또 어떨까?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소니는 자율주행 자동차안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심어 넣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참 소니 다운 행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영감을 주고 감정적으로 감동시키는 일을 한다” 소니는 그들의 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삶에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음악기기든, 게임기든, 자동차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자세. 음악과 인생에 대한 P의 망상은 소니라는 브랜드가 주는 영감으로 매조지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P의 교보문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