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의 어머니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옛날 어머니였다.
그러니까 늘 희생만 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고, 자기를 돌볼 줄 모르고, 늙어서까지 자식 걱정만 하는 그런 유형의 어머니였다는 이야기이다. 무릇 자식이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런 어머니에게 감사와 존경을 품는 것이 응당 당연한 일일 것이나 P는 감사와 함께 못마땅함을 동시에 품었다. 왜 그렇게 희생만 했는지, 자기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못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P가 가장 못마땅했던 부분은 어머니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 물을 때마다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무거나"
어떤 옷이 마음에 드시는지 물을 때에도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냥 아무거나"
때문에 P는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를 소비할 때마다 결코 풀리지 않는 난제를 앞에 둔 학생처럼 미간을 찌푸려졌다.
'도대체 뭘 좋아하시는거야?'
물론 P도 알고 있었다. 취향이라는 것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같은 영역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두루 경험해 보았을 때 비로소 취향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이것저것 시도해 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 대로, 혹은 가장 저렴한 무엇을 최선의 선택지 삼아 살아오셨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P는 어쩌면 비겁했다. P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왔다. 특히 20대까지는 특별히 내세울 취향이랄 것도 없었다. 어머니 덕분에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야 P에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다. P는 자신이 과일향이 나는 쌉싸름한 페일에일을 좋아하고, 담백한 문체의 무해한 에세이를 읽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SF영화를 볼 때 가장 몰입하고, 작은 디테일이 들어간 오버사이즈 의류에 끌린다는 것을 알았다. P가 못마땅했던 것은 사실,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게 된 자신과 그렇게 되기까지 묵묵히 길만 만들어준 어머니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P는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서 집착하듯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것을 떠올리려 애썼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이거 참 맛있다" 하신게 언제지? "이거 예쁘네"하신 게 언제지?하고 과거를 더듬었다.
P는 고민 끝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 딱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지독한 맥심 중독자였던 것이다. 아메리카노는 물론 라떼도 맛없다며 거부하시는 어머니였지만 맥심 믹스 커피 만큼은 다르셨다. 어린 시절 부터 어머니는 식사 후면 늘 맥심 커피를 찾으셨다. 종이컵에 맥심 커피를 탈탈 털어 넣고 끓는 물을 정확히 반절 따른다. 티스푼으로 휘휘 저어 드리면 어머니는 세상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는 것처럼 행복해 하셨다.
"그거 건강에 안 좋대. 좀 줄여요"
하고 P는 잔소리를 했지만 부엌 한쪽에 쌓여있는 노란색 맥심 봉지를 보면 마음 한편에 묘한 안도감이 생겼다. 그래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 하나라도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