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P가 가장 자주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ChatGPT이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에 가깝지만 말이다. 1년 전만 해도 P의 질문에 엉성하고 근거 없는 답변을 뱉어내던 ChatGPT였다. 하지만 이제 꽤 정확할 뿐 아니라 인간인 P가 도달하지 못했던 상상의 영역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논리적인 발상에 능한 P에게 부족했던 창의적인 발상을 ChatGPT가 곧잘 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P는 ChatGPT를 개인 카피라이터로 고용이라도 한 것처럼 활용했다.
"내가 지금부터 설명하는 마케팅 전략의 컨셉을 내봐. 심플할수록 좋은데 이 카테고리에서 잘 쓰지 않았던 단어를 활용해 줘"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방대한 분량의 계산이나 번역, 요약과 같이 인간이 직접 하기엔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대신해주는 존재 정도로 치부했지만, 2025년의 ChatGPT는 인간을 뛰어넘는 감각적인 발상과 예리한 인사이트를 품은 '창의적 지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아웃풋뿐만 아니라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ChatGPT는 인간처럼 까다롭지 않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을 요청해도 군말 없이 노력해 주었다. 때로는 '이런 방향은 어때요?'하며 역으로 발전적 의견을 개진할 때도 있었다. "별론데?"라는 시큰둥한 대답에 맘 상해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고 수다스럽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그런 ChatGPT가 든든했지만 오묘한 기분에 휩싸일 때도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ChatGPT로 말미암아 더 좋아지고 있는 건지, 더 약해지고 있는 건지 규정짓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P는 가끔 두려워질 때도 있다. ChatGPT에 뭐든 의존하는 스스로를 볼 때가 특히 그렇다. PPT 배경화면으로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을 때도 ChatGPT에 물어보았다. 협력업체에 협업에 대한 감사 인사 메일을 뭐라고 쓸지조차 ChatGPT의 손을 거쳤다. 심지어 단톡방에 뭐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질지도 물어볼 때가 있었다.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개념을 또렷하게 떠올리려 할 때, 좀 더 좋은 표현으로 다듬고자 집착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입장을 바꿔볼 때처럼 뇌가 뻐근해지는 것 같은 몰입의 경험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 노동으로 먹고산다고 자부했던 P 지만 P가 오롯이 담당했던 생각 노동의 상당 부분은 ChatGPT에 이관되었다. 어느 날 P는 ChatGPT에게 물었다.
"내가 고민해야 할 많은 부분을 네가 대신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이러다 내가 멍청해지는 것 아닐까?"
ChatGPT는 소름 끼칠 정도로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제가 생각을 대신해 주고 결론까지 제시하다 보면 '두뇌 근육'을 덜 쓰게 될 수도 있죠. 제가 앞으로는 정답형이 아니라 힌트형, 단서형으로 먼저 드릴 수 있어요. 모드를 바꿀까요?"
P는 "그래"라고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