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가 가장 아끼는 시간은 아침이다. 힘겹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하고 산미 있는 커피를 내린 후 마침내 책상에 앉은 그 시간을 시작점으로 2~3시간 정도의 아침 시간, 그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 사고 싶을 정도로.
아침 시간 동안 P의 머릿속은 청명하다. 아무런 잡음이 없는, 이따금 풀 스치는 소리나 새 지저귐 정도가 들리는 아침의 호숫가와도 같다. 아침 시간 동안의 깨끗한 머릿속에서는 또렷한 문장이 떠오르고 풀어야 할 매듭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난밤 떠올렸던 잡다하고 기름기 낀 생각 중 고유한 가치를 지난 아이디어만 정교하게 발라낼 수 있다.
그 때문에 P는 아침 시간마다 그날 해야 할 가장 창의적인 과제에 대해 골몰했다. 분명 아침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머리속은 진흙이 묻은 수레바퀴처럼 거추장스럽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그렇기에 P는 아침 시간을 늘 소중하게 생각했고 그 시간 동안의 작업을 기꺼이 즐겼다.
이렇게 소중한 P의 아침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디지털 기기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동 반사적으로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바탕화면의 중앙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SNS나 영상 플랫폼 중 하나를 클릭하게 된다. 즉각적으로 짧고 자극적인 영상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영상들을 탐닉하다 보면 뇌가 절여지는 기분이 든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끈적해져 버겁게 돌아가지 않는 뇌를 느끼며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퍼뜩 들 때가 있다. 매번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에 휩싸이면서도 하루이틀이 지나면 다시 앱 아이콘을 터치하는 손가락을 보며 ‘이건 외부의 뇌 해킹에 의한 행위이지 않을까’라는 합리적 음모론을 떠올리게 된다.
청명한 아침의 머리가 디지털 기기에 의해 침범받는다는 위기의식이 들면 P는 늘 그랬던 것처럼 커피를 한 잔 더 내린다. 밤의 커피는 졸음에 저항하는 역할에 한정되지만, 아침의 커피는 청명함의 기한을 연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의 커피는 바닐라 향의 룽고. 옅은 바닐라 향이 나는 부드러운 커피다. 리볼버에 탄창을 장전하듯 머신을 열고 캡슐을 넣는다. 버튼을 누루면 '푸슛'하는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커피 향이 퍼지고 머신이 부르르 몸을 떤다. 덩달아 P도 머릿속 잡념을 부르르 털어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커피가 잔을 채우면 P는 커피를 홀짝이며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P가 가장 아끼는 아침 시간은 이마 조금 지나 있었지만 커피의 잔향처럼 청명한 아침 머리가 조금 더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