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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 Oct 13. 2021

결국 PD가 됐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리.

2019년 8월, 자의 반 타의 반 대학 졸업 신청을 하고 2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나는 PD가 됐다. 케이블 방송사의 프로듀서. 처음 PD를 준비했을 때부터 바랐던 메이저 방송국의 PD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 의미가 꽤 크다. PD는 내 인생의 첫 목표였으니까.


돌아보면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 기간이라고 불리는 '인고의 시간'을 꽤 무식하게 보냈다. 공대에 다니며 이제는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방송국 PD가 되기로 결심했고, 이는 스스로를 꽤 힘들게 만들었던 선택이자 거듭나는 순간이었지 않았나 싶다. 인맥은 물론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 즉 제로(0)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취업의 여정은 매우 험난했다. 공대생은 수강신청조차 받아주지 않는 언론정보학과 교수님께 직접 메일을 보내 수강 허락을 맡았고, 카메라는 셔터 버튼 누를 줄만 알았던 유튜브라는 좋은 선생님 밑에서 촬영과 편집을 배워 공모전에도 꾸역꾸역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목표에 닿기 위해 꾸역꾸역 기어갔다.


공모전에서 한두 번 상도 타고, 현장을 배우기 위해 외주 제작사에 들어가 조연출로 현장의 쓴맛을 보기도 하며 조금씩 성장했다. 그 와중에도 여러 방송국의 공채를 지원했지만 면접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잦은 탈락 속에서 나는 공채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 당시 맡았던 조연출 업무에 더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부서에서 크게 의지하고 있던 팀장님이자 사수가 회사와의 문제로 그만두게 된 것이다. 몇 개월 전 결심했던 마음은 다시 풀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한 케이블 방송국의 PD 직군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았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일까. 별 기대 없이 지원한 서류는 통과했고 두 번의 면접 끝에 나는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2년 넘게 기다려왔던, 아니 군대에서 처음 PD가 되기로 결심하고 약 5년을 고대했던 목표가 단 2주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PD가 됐다.


사실 그때를 돌아보면 합격 통보를 받고 그렇게 기쁘지 않았던 것 같다. 굳이 그 이유를 떠올려보자면 아마 실제로 원했던 지상파 방송국이 아닌 점, 근무지가 서울이 아닌 지방인 점 등등이 아니었을까(역시 인간은 걱정은 사서 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 끝에 결국 떠오른 말이 하나 있었다. 처음 PD라는 꿈을 가졌을 당시, 무작정 이메일로 요청했던 어느 PD님과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말.



 "... 고민하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자신 없어 하지도 말고,

일단 발을 내디뎌 한 걸음씩 자신의 발만 보고 나가길 바라요.

그 걸음들은 쌓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꿈에,

최소한 꿈 근처에 데려다줄 겁니다."



느리지만 꿋꿋했던 나의 걸음들은 결국 쌓였고, 정확히 그 목표는 아니었지만 목표 근처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한 나의 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무수히 많이 남은 나의 걸음들이 그 목표로 데려다줄 것을 믿는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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