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통해 얻은 휴식으로 나를 돌아본다
지난 4월 코로나19에 확진되어 평생에 최고로 고통스러운 1주일을 보낸 후 7개월이 지났고, 나는 재 확진됐다. 단순히 겨울이 돼서 면역력이 떨어졌구나 생각도 했지만 지난 7개월을 돌아보니 걸릴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분노로 바뀌고 있던 직장생활, 아내의 임신으로 인해 남편으로서 속으로 감내해야만 했던 모든 욕구와 감정들 그리고 신혼살림을 위해 내려온 타지에서의 외로움 등에 나는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당시에는 나 자신이 이런 상태인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입덧으로 힘든 아내를 보며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나의 상태를 무시하며 살아왔다.
아내의 입덧이 어느 정도 해소된 후 그즈음부터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계속 떨어진 상태에서 머릿속을 사로잡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매일을 싸웠다. 몸과 마음이 모두 예민했던 탓에 회사에서는 파트장과 소리 지르며 싸우는 일도 있었고 회사 업무는 물론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진행해왔던 모든 일을 멈춰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한 2주 정도를 떨어진 컨디션으로 꾸역꾸역 살아가다 보니 결국엔 생각도 못한 병도 찾아왔다. 코로나19 재감염. 첫 감염 때 너무나 고생을 많이 했던 터라 다시는 앓기 싫었는데 결국 내 몸은 이번에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 당시에도 극심한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컨디션이 떨어진 상태에서 걸렸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 뒤에는 항상 병이 따라왔다.
격리를 하며 고민했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나는 왜 씩씩하게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항상 이렇게 후폭풍을 겪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반년만에 올라간 고향집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고향에 올라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안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못 본 새 생각보다 수척해진 내 모습을 보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죄송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위안을 얻었다. 아쉽게도 오랜 친구들과의 약속은 개인 사정으로 다음을 기약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나누는 친구들과의 안부조차도 꽤 큰 위로가 됐다.
내 감정을 배출할 통로가 없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아내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고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탓에 만나서 풀 친구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전화해서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께 짐을 지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약 반년을 나는 고립되어갔다. 그런데 남한테 받는 위로는 오히려 기만일 것이라는 나의 '유아독존' 같은 사고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그 생각과 원칙으로 나 자신을 돌보진 못했다. 아들의 수척한 얼굴을 본 후 매일 저녁마다 시시콜콜한 일을 핑계로 어떻게든 통화하려는 어머니를 보며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도 타인에게 위로를 받는 존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