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어그로성 짙은 제목을 사용한 점을 사과 드린다.
이번 지브리 AI 사진 열풍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요새 인스타, 카톡을 보면 죄다 지브리풍 사진들이다. 이번에 GPT가 업그레이드 되고, 지브리풍을 포함해, 디즈니풍, 심승풍, 르네상스 풍 등 사진 생성이 쉬워진 덕이다.
사실 이러한 이미지 생성은 2023년부터 이미 가능했는데, AI 기술의 발전 및 대중화, 그리고 밈 열풍의 확산이 이러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지브리 화풍을 즐기고 있는 한편, 한 쪽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바로 저작권 문제. 화풍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화풍은 명백히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 저작권법은 ‘표현된 결과물’만 보호한다. 즉, 어떤 화풍이나 스타일은 ‘아이디어’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역시 “단순한 아이디어, 형식, 장르, 기법 등은 보호받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AI가 지브리 화풍을 학습하고, 유사한 느낌의 이미지를 무한히 생성해도 그 자체로는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풍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다.
화풍은 아티스트들의 수 많은 노고가 들어간 R&D의 결과물이다.
웹툰에서 어떤 그림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회수가 갈리고, 게임에서 어떤 아트 디렉션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갈린다.
과거 게임사에서 일할 때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IP에 적합한 아바타 스타일’을 찾기 위해 수개월을 허비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그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수백억을 들인 게임이더라도 화풍, 스타일이 맘에 안들면 바로 반감이 들어서 끈다. 그 정도로 화풍은 중요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체’를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과 반복 실험, 그리고 천부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우리가 디즈니나 지브리 그림을 보고 감흥이 덜한 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익숙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몇십 년을 매달렸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이처럼 막대한 리소스가 들어가는 화풍은, 법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은 없으며, 상표 등록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지금처럼 무제한으로 학습되고 복제되어도, 창작자는 법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없다. 그리고 이는 인터넷 생태계 전반의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괜찮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재밌다’, ‘신기하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만든 그림체나 스타일을 인터넷에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상업적 활용 단계로 진입하게 되면 상황은 급변한다.
누군가 밤새워 만든 그림체가, 다음날 AI 학습 모델로 복제되고, 그걸 기반으로 만든 이미지가 기업 광고에 활용된다면? 그 순간부터 누구도 자신의 창작물을 인터넷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 수익이 아니다.
자신의 작업물이 '인간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인정받는 것, 그 최소한의 존중이다.
하지만 AI는 그것조차 지운다. 게걸스럽게 삼키고, 모방하며, 결국 창작자의 존재 자체를 삭제한 채 ‘창조주’ 행세를 한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모방을 하려면 반드시 레퍼런스가 있어야 한다.
Web 2.0 시대는 그런 레퍼런스를 가능하게 했다.
누구나 자신의 창작물을 올렸고, 공유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터넷은 서로의 창작이 다시 창작을 낳는 풍요의 생태계였다.
하지만 이제 AI가 그 모든 데이터를 집어삼키고 있다.
창작자의 문장, 이미지, 목소리, 그림체는 레퍼런스가 아니라 ‘소재’가 되었다.
출처 없이, 맥락 없이, 보상 없이.
그런 세상에서, 누가 기꺼이 창작하려 하겠는가?
만약 AI가 창작자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파괴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한다면, 인터넷은 멸망할 것이다.
그 누구도 컨텐츠를 발행하지 않고, AI 는 무의미한 자가 증식을 반복하다 결국엔 고요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게임사에서 일하며, 하나의 화풍과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쏟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이번 지브리 AI 사진 열풍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는 썼지만 결국 인터넷은 계속해서 풍요의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여전히 창작자들은 존재할 것이고, AI든 플랫폼이든 결국 적절한 보상을 주며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처럼 생각하기보다는,
“그러면 AI한테 먹이는 데이터가 돈이 되겠네?”
“AI는 어떤 데이터를 좋아할까?”
“지브리 화풍은 값어치가 있다는 게 증명됐는데, 그럼 이런 류의 IP 중에서 다음은 뭘까?”
“AI의 대중화? 지브리에서 컷. Contents is King. 앞으로 나는 어떤 컨텐츠를 만들어야 할까?”
이런 식의 생각들이 더 생산적일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다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노고가 담긴 결과물이 아무런 보상없이 남용되는 것이 아쉬워서 이런 글을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