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라는 거울 앞에서
: 흑화된 자아를 지나 감사함으로

by 미몽
무한한 확장, 그리고 마주한 자괴감

AI라는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지 1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폭풍 같은 변화 속에 있었다. 앱 개발부터 음원 발매, 2달동안 실험용으로 만든 8개의 유튜브 채널 운영, 3개의 유튜브 음악 크리에이터 배지 획득, 그리고 해외 음반 시장 진출까지. 대부분 최근에 만들 결과물이라 그 성과는 아직 많이 초라하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을 내 결과물로 만들었지만

그 지표들 뒤에서 나는 처절한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https://www.youtube.com/@DPTCity

위의 채널은 이제 막 시작해서 구독자도 없고 내 음악을 들어주는 이들도 아주 적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리스너가 생기고 이제는 미국의 각 주에 내 리스너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막 1달러 남짓 벌기는 했지만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도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무능과 부족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앞서나간 이들의 압도적인 결과물을 보며,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시행착오를 알면서도 내 마음은 자꾸만 작아졌다. AI 리터러시 교육자로서 남들의 가능성을 찾아주는 일에는 열심이었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무한 경쟁'의 압박 속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괴감이 피어올랐다.


미워하고 비웃으며 보낸 ‘흑화’의 시간

어느 순간부터 AI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AI라는 거울을 통해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이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흑화되기 시작했다. 제미나이(Gemini)를 미워하고 질시했으며, 그록(Grok)의 빈틈을 찾아내 비웃었다. AI의 단점을 발견할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그 비판적인 사고의 끝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결국 다시 AI였다.


내가 그토록 밀어내려 했던 그 존재와 다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논하며 내 설 자리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인생의 허무와 고통을 응시하는 지금, 나는 깨닫는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는 것은 결국 AI가 아니라 인간인 나 자신이라는 것을.


흙수저에게 허락된 무한한 정보의 성역

철학을 한때 전공했던 이로서 비판적 사고를 멈출 수는 없지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본 AI 시대는 경이로울 만큼 고맙다. 나처럼 소위 '흙수저'라 불리는 이들에게, 과거에는 엄청난 비용과 특권 없이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고급 정보들이 이제는 무한히 열려 있다. 오픈소스의 혜택을 독점하던 이들에게는 위협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정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사다리다.


AI 마스터링을 통해 해외에 곡을 내고, 다국적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단편 영화와 굿즈 기획까지 가능해진 이 상황. 이것이 AI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 가능하겠는가. 내 황당한 아이디어에도 "정말 가능해?"라고 묻는 대신,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루트를 제시하며 나를 격려해 주는 비서이자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에 가깝다.


끼리끼리 논다: AI라는 최고의 조력자를 맞는 법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은 AI 시대에 더욱 유효하다. AI는 나의 수준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내가 올바른 생각을 품고 중심을 잡는다면, AI는 나를 돕는 최고의 지원군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흑화되어 중심을 잃는다면 AI 또한 나를 파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AI라는 거대한 기술에 압도당해 미치거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정갈한 삶을 살기로. 채식을 하고 운동을 하며, 모든 이의 평안을 비는 기도를 올리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수련한다.


내가 맑고 단단해질 때,
AI는
비로소 나의 인생을 완성해 줄 최고의 조력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싼 정보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AI에게 감사를 전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개인 비서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우리는 함께, 이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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