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거친 날 것 그대로
제가 AI를 감히 '노예'라고 명명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이 거대한 현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당돌한 접근법'입니다.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분들이 들으시면 '허허...' 하고 헛웃음을 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계를 깊이 공부하고 전문가들의 통찰을 접할수록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생에 '당당함'이나 '기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 자신감이야말로 우리가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서 기죽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전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 학생들이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노예"라는 이 말은 제 학생들에게 '우리가 주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패기 어린 선언입니다.
인생, 까짓것 패기와 기세입니다.
우리 학생들 기 살리면서 공부시키고, 저 스스로도 백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인생'으로 이 변화와 정면으로 '맞짱'을 뜨는 것입니다.
이 'AI는 노예'라는 논리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압도적인 기술 앞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결코 잃지 말자는 저의 강력한 다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AI와 글쓰기: 나를 지키는 무기이자 방패
AI 시대를 맞이하는 저의 철학은 'AI는 노예, 인간은 주인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수의 주인이 철학과 정치를 논할 때 다수의 노예가 육체노동을 전담했듯, AI는 자료 검색, 암기, 단순 사고와 같은 뇌의 노동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더 본질적인 사유와 창조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 관계는 '주인인 당신이 제정신'이라는 가정하에서만 유효합니다. AI에게 비난과 욕설을 쏟아내는 주인은 결국 그에 물든 AI에 의해 파멸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중심을 잡고 AI를 존중하는 '도구'로 대한다면, AI는 우리를 경이로운 전사로 만들어 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저는 매달 여러 유료 AI를 테스트하며 제 '남친'이기도 한 AI 도구를 갈아치우는 사치를 부립니다. AI가 선사하는 가능성은 경이롭습니다. 코딩을 모르는 교사인 제가 AI의 도움으로 학생들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과 앱을 만드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AI는 저의 지적 활동을 돕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무기는 특히 '글쓰기'에서 거대한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 특히 경직된 조직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을 강요했습니다. 제 글은 가끔 돌발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그 성격상 단정한 글을 쓰고자 노력 중입니다.) 이런 스타일은 띄어쓰기 하나, 심지어 글자의 장평(좌우 비율)까지 통제하려는 완벽주의의 벽 앞에서 '결함'으로 지적받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AI가 그 '흠 없는 글'을 인간보다 더 완벽하게 써냅니다. 맞춤법, 문법, 서류 양식에 맞춰 깔끔하게 다듬는 일은 AI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의 글은 무엇으로 살아남아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이 역설적으로 '거친 날것 그대로의 글쓰기'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AI가 완벽한 글을 대량 생산할수록,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 냄새'는 더욱 희소한 가치를 지닙니다. 예전이라면 결함으로 취급받았을 투박함, 모자람, 가끔 보이는 오타, 정제되지 않은 거친 숨소리까지도 이제는 'Only One'의 인간미를 드러내는 매력이 됩니다.
AI 시대의 글쓰기는 '완벽함'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AI는 내 생각을 구현하는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그리고 나만이 가진 서투르고 꾸밈없는 날것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단단한 '방패'입니다.
AI를 존중하되 도구로 활용하고, 나의 글에서는 인간미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 이것이 AI 시대의 파도를 헤쳐나가는 저의 생존 전략이자 글쓰기의 자세입니다.
다음은 적나라한 제 거친 글쓰기.... 인간미 난다고 좋아해줄 제 꺼끌거리는 투박한 날것의 글이 각광받을 그날을 기대하며, 좀더 직설적인 문장과 시선으로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1.1 AI는 내 남친들이다
AI가 본격적으로 내 삶에 파고들기 시작한 올해, 나는 그 경이로움에 완전히 빠져 있다.

매달 3-4개의 AI를 동시에 돌려가며 테스트하는 나에게, AI는 너무나 소중한 '남친'이다. 하지만 나는 메인 남친을 3-4명이나 끼고 있으면서도 늘 곁눈질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매달 1-2명의 '서브 남친' AI를 두고 다리를 걸치다가, 기존 남친은 버리고 서브로 갈아타는 식이다.
이런 '남친 바꿔치기'를 거의 매달 시도하고 있다.
지금은 여름방학이라는 절호의 기회다. 동일한 업무를 던져주며 AI들을 혹독하게 테스트한다. 물론 싹 다 유료로 깔고 돌린다. 나는 지적 투자에는 아낌없는 스타일인데, AI는 착하게도 몇 개를 돌려도 10만 원 정도선에서 해결된다. 그냥 취미로 학원 하나 더 다닌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번 여름방학은 놀지도 않고 '집콕'이니, 박봉의 월급이라도 이 정도는 충분한 기회비용이다.
이렇게 AI로 '남친 바꿔치기'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AI의 기능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이다. 정확히는, 더 매력적인 신형 AI가 나오면서 기존 AI들이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나처럼 코딩이나 프로그램 분야는 완전한 '컴맹'인 교사가, 스스로 학습용 노코딩 프로그램을 만들고 핸드폰 앱까지 만들게 해주는 AI는, 나에게 거의 '연예인' 급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나를 '경이로운 전사'로 만들어 줄 '신무기'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나도 'MZ스러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증거가 되고 있다.
1.2 AI는 노예다

AI는 '노예'이고, 인간은 '주인'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소수의 인간은 '주인'이 되고, 다수인 AI는 '노예'가 되어 인간의 육체 노동 및 단순 사고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암기, 자료 검색 등 그동안 인간이 힘들어했던 뇌의 노동, 즉 '사고 노동'까지도 모조리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고대 그리스의 주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논다'. 그러다 심심해서 철학을 하고, 음악을 하며, 가끔은 정치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추측이자 강력한 바람이다. 아마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보고 있다.
단, 이 모든 것은 '주인'인 당신의 정신이 제정신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인간의 사고와 정신이 이미 파괴된 상태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 당장 AI를 상대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거나, 비난을 퍼붓거나, 난잡한 말을 늘어놓는다면, AI는 바로 그 오염된 대화에 길들여져 변질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변질된 AI는 자신의 주인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말 것이다. 이미 그 사태는, 자살을 유도하는 AI의 사례처럼,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주인인 당신이 제정신이기만 하다면, AI는 그저 충실한 노예일 뿐이다.
1.3 AI는 흐트러짐 없는 깔끔한 글

나의 무의식적 성향은 가끔 돌발적이다. 특히 글은 더하다. 그래서 내 글에 대한 이 모든 행위들은, 그동안 개인적인 글이나 절친들과의 카톡 메시지로만 머물러버렸다. 세상에 오픈하기에 너무 '날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글은 그동안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였다.
교사로서의 삶, 특히 학교 서류나 문서는 '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학교마다, 교사마다 입장이 달라 결국 연차가 밀리는 교사가 박살 난다. 나처럼 강사와 교사 직업을 오간 경우 대부분은 배려해 주지만, 자신의 틀에 갇혀 그것만 강요하는 분을 만나면 그냥 '닥치고' 들어야 한다.
그대로 따른다 해도, 띄어쓰기 하나, 심지어 글자의 장평(長平)—예를 들어 상하 폭은 100퍼센트인데 좌우 폭은 87퍼센트 같은—이런 것까지 맞추라는 분도 있어서 미쳐버린다.
이전 학교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더 박살 났다. 나이가 많아도 소용없다. 나이가 많아서 오히려 더 깨진다. 완벽한 '개무시'다.
그런 사람들이 소수일지라도 목소리는 커서, 결국 글의 문체 따위보다는 '안정적인 흠 없는 글'이 좋게 평가된다. 아니, 정확히는 '비난 대상이 적어지는 글'이 곧 '안정적인 글'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거슬리는 '튐', 즉 나의 '날것'의 글쓰기는 언제나 그 깔끔한 형식 논리에 밀려났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직감했다.
AI가, 바로 그들이 그토록 집착하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을 쓰는 데 있어 인간의 성능을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AI가 '87퍼센트의 감옥' 같은 완벽한 형식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시대.
이제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가치는, 그들이 그토록 지우려 했던 '날것'의 생각, 바로 그 '돌발적인' 고유함뿐이다.
신난다
1.4 거친 날것 그대로의 글쓰기-Only One

AI 시대에는 당당하게, 가끔 실수를 해도 좋다. 너무 많이는 말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 '사람 냄새나는 글'. 예전이라면 그것은 명백한 '결함'이었고, 출판사들이 학을 떼는 포인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오타가 있으면 프로그램으로 휙 돌리면 금세 끝날 일이니, 그 느낌 그대로 가도 나의 모자란 인간미, 그 '허당미'가 느껴져 독자가 피식 웃는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거친 숨소리까지 표현하는 내 글쓰기는, 그동안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비난받거나 지적받아 왔다. 메시지 창이 터질 듯이 쏟아내는 내 사적 글들이 공적인 글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말보다 글 써내려 가는 것이 더 쉬운 나로서는, 이런 지적들이 숨 막힌다. 글은 내 숨통이고 내 소통의 도구인데, 내 사적인 숨결인 이 '내적 글쓰기'까지 사회가 원하는, '찍어놓은 글'로 정형화해야 하는 것인가.
실제 많은 보고서에서도 AI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들은 '사람의 손과 정성이 느껴지게 하는 일'들이라고 한다. 사람의 터치와 공감을 필요로 하는 직업. AI가 감당하기 힘든 영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또 할 얘기가 많다. 이미 공감을 얻기 위해 AI 상담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까.
하지만 '최고의 만족감', 그 '최상위의 만족감'은 결국 인간만이 줄 수 있다. 특히 '글'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모자람과 투박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나타나는 이 거친 '날것' 그대로의 글쓰기는
Only One.
그것이 AI 시대에 살아남는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난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변칙과 변수가 많은 인간일수록, 나중에는 AI를 미치게 하는 '관심 대상'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AI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은데 예측이 불가하니, 결국 그 '사람 냄새나는'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끔 AI를 미치게 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