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퇴직 D-1

유일한 한국인 국제학교 여교사

by 미몽

"교사는 영원에 영향을 미친다. 그의 영향력이 어디서 멈출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 헨리 애덤스


D-1: 다시 프롤로그


이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상당수의 글들은 아직은 내 저장창고에 있다. 왜냐하면 가장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퇴직이 확정되고 마지막날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새롭게 프롤로그부터.


많은 고민을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야하는것이 작가인가 그냥 내 경험을 뱉어내듯 쏟아버리는 것이 작가인가. 브런치 작가가 갑자기 되고나서 축하를 받아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덜컥 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면서 고민이 생겼다. 이 경험을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내려가야할 것인가. 그러다 이제는 떠날 시점, 새롭게 다시 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국제학교 한국인 여교사 종료 D-1


나는 3000명이 넘는 중국 어느 명문고의 유일한 한국인 여교사다. 이 학교에는 국제학교가 있고 나는 그곳의 영문학을 가르치는 영문학과 교사였다. 불과 얼마전까지는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최근 며칠전 부임한 선생님이 오시면서 유일한 한국인 여교사, 그 다음날 나는 퇴직하기 일주일전 한국인 교사가 되었다. 내 퇴직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싸움을 위한 싸움의 전면전 속에서 나는 소위 말하는 '희생양'이 되기 딱 좋은 사람이었다. 학부모들과 학교의 대치전. 그 가운데 나는 또 다른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국제학교 교사라는 자리는 여러 회차이지만 이렇게 덩그러니 혼자만 한국인 교사가 된 적은 처음이었다. 구인 공지란에 적혀있는 일 자체가 좋아서 지원했던터이지만 막상 와보니 막막했다. 이 영문학 과목에 여러 원어민 선생님들이 지원했지만 여러차례 포기하고 남은 자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학생들 기억으로는 8번, 학교 말로는 4번이라고 한다. 어느 말이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참 난감한 자리인 것은 맞았다.





교사라는 자리는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이라는 시간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미숙함이 또는 치기어린 행동들마저도 따뜻하고 밝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 역시 사람인지라 그들의 치기어린 또는 배려없는 행동에 상처는 고스란히 받는다. 심지어 학부모가 던지 돌마저 있으면 심적인 상처를 너머 진짜 외적인 상처를 받는다. 특히, 그들이 소위 학교운영위원회의 소수라할지라도 밑보이거나 심기에 거슬리면 가차없다.




해외를 떠돈지 10년이 넘었다. 여러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고 여러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부족하다 생각해서 또 다시 유학을 하기도 했고 일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채워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 자체는 신성하지만 그 과정은 3D 업종이라할만큼 비참한 경우가 있다. 스스로를 갈아내고 갈아내도 부족하다 싶다.


활인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를 갈고 갈면 그만큼 알아주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번은 한번으로 무너져버렸다. 끝이 나버렸다.


첫 단추부터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래서 내려놓는 결정도 빨랐다. 이미 직감했던지 나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상사(교사들의 직급에 상사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군림하고자 하거나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을 만나는 그는 더욱 잔혹한 상사가 된다)'에게 이전에 소위 말해 '쫓겨난'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본인이 자소서와 원서를 받았으면서 일하자마자 그 상황들에게 대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겪어보면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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