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홍 Nov 22. 2024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들


딸 둘, 아들 하나.

아직 의무교육이 끝나지 않은 미성년의 아이들 셋.

몇 해 전 20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여물지 않은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냈다.

왜 이혼을 했는지,

왜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몇 글자의 이유로 묻어버릴 수 없는 보다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으리라.

그럼에도 모든 이유들의 결론은 내가 목숨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이들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멍자국을 남겼다는 것이 그것이다.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야 어느 누가 고슴도치에게 밀릴 수 있으랴.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큰 아이가 열 살 무렵 내가 가게를 시작했다.

둘째는 일곱 살, 막내는 다섯 살 무렵,

그때부터 큰아이는 동생들 저녁을 챙겨 먹이고 씻기고, 같이 자면서 엄마 없이 엄마노릇을 야무지게 해냈다.


어느 날 일하다 잠깐 아이들 저녁 먹이려 집에 들어가 보니, 큰아이가 작은 밥상에 김치통을 통째로 올려놓고 국그릇에 물을 담아 김치를 물에 씻어서 밥 위에 올려 김에 싸서 동생들에게 먹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동생들은 TV에 정신이 팔려 입만 벌리고 앉아서 큰아이가 싸주는 밥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돌아앉아 있는 큰아이 뒷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서 뭔가 '쿵'하고 내려앉았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큰아이.

순간 눈시울이 붉어져 조용히 문을 닫고 집을 나왔다.

저 아이의 마음이 지금 어떤 마음일까, 나는 알 수 있을 듯했다.

한없이 뭉클해진 마음을 나는 숨기고 싶어 한참 동안 집 주변을 배회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어릴 적, 우리 큰 아이보다 더 어릴 적 나에게서 비겁하게 도망쳐 나왔다.


나에게도 그런 동생들이 있다.

비가 내리면 춥다고, 배가 고프면 밥 달라고, 졸리면 업어달라고 어린 누나에게 파고들던 어린 남동생들.

내가 여덟 살, 밑으로 네 살, 세 살이었던 동생들이다.

엄마는 늘 집에 안 계셨다. 일을 하진 않으셨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항상 바쁘셨다.

그래서 그랬는지 동생들은 나에게 더 많이 무엇을 해달라고 졸랐고 나는 기꺼이 원하는 걸 들어주었다.

동생들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당시 우리 집 사정이 그랬었다.


나는 큰 아이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저 아이도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겠구나.

간단히 설명되지 않을 어떤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구나...

내가 지금 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어린것한테 지워주지 않아도 되는 짐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가 바쁘니까 당연히 네가 도와야지!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알아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큰아이에게 나는 어떻게, 뭐라고 이 뭉클한 마음을 표현해줘야 하나....


그러면서도 유난히 큰 아이에게는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

공부도, 성적도, 교우관계도 뭐든 잘했으면 했다.

그냥 여느 집의 부모들처럼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 취직하고...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절실하게 큰 아이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를 원망할까 봐서도 아니었다.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주었으면 했지만 큰아이는 불평, 불만 없이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큰 아이가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눈물부터 쏟는 것이었다. 채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동그랗게 큰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봤다.

순간 나는 느꼈다.

이 아이에게 억울한 것이 있구나....

자기도 모르는 분노가 있구나...

그게 나 때문이구나....

그 생각을 하며 가슴뼈가 두 조각나듯이 아려오던 그 아픔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큰 아이의 그 숨죽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눈물뿐인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런 큰아이에게 나는 왜 모질게 대했을까.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됐을 것을,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었으면 됐을 것을. 나에게 다가오려는 큰 아이를 자꾸 밀어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서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두려워서....

우리 큰아이가 동생 돌보느라, 엄마 일거리 도와주느라, 스스로 자신을 내려놓을까 봐 나는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때의 나처럼...

작은 두 어깨에 놓인 짐이 버티기 힘들 만큼 무거워도 내려놓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을까 봐.

나는 몹시 두려웠다. 그러면서 큰아이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내가 말할 수 없이 역겨웠다.


큰아이에게 어느 날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엄마 딸 **야~~

-중략-

엄마가 너한테 많이 부족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엄마 목숨보다 소중해, 너에게 많이 고맙고...

그러니까 엄마가 많이 미안해.. 용서해 줄 수 있겠어?'


편지를 받은 딸에게서 답장이 왔다.

'사랑하는 엄마!'로 시작하는.... 가슴뼈가 다시 한번 무너지듯 아팠다.

'나도 엄마 딸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엄마를 더 많이 웃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중략-

그래도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내가 우리 엄마에게서 제일 듣고 싶은 말이었고, 제일 하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한동안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둘째, 셋째와도 가끔 힘들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이혼을 준비하는 중에 남동생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누나혹시 이렇게 이혼하고 아이들한테 상처 주는 이유가 엄마한테 복수하려는 마음 때문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누나가 목숨보다 아끼는 아이들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들이어서 그래...

잘 커주길 바라서....

내 안에 있는 어릴 적 학대당하던 모습 그대로 내가

내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는 악마가 된 것 같았어. 그것이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어.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슬프고, 억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갇혀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야. 학대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차마 이런 나의 마음을 동생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런 엄마였지만 동생들에게는 좋은 엄마였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내 마음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남동생의 마음을 안다.

누나와 조카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동생만의 언어로 질문했을 것이라는..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엄마 그때 왜 그랬어?라고 물어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아직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했다.


"엄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내가 우리 엄마한테 꼭 한 번은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지만 아마 나는 그 대답을 평생 듣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질문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그 대답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엄마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에게서 들려질 대답 또한 그게 무엇이든 이제 쓸모가 없게 돼버렸다.

더 이상 나는 지켜야 할 것이 없고, 이 나이 먹고 보니 그런 것들이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 여물지 않은 내 아이들은 부디 엄마로부터 지켜야 할 것 없이, 상처받을 것 없이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훗날 나의 결정이 내 목숨과도 같은 아이들에게는 자유였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참고 [Pinterest]









 

작가의 이전글 하루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