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실존주의적 선언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1942년 발표한 실존주의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방인'은 너무나 많이 회자되던 소설이라 대충의 내용만 파악하고 읽어보지 않았는데, 실제로 시간을 내어 읽어보니 시대를 앞서가는, 굉장히 현대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로 2020년대에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을 죽인 것으로 묘사되는 주인공 뫼르소는 현대인의 실존적 소외와 권태를 상징하는 인물로, 모든 사달의 원인이 되는 레몽이라는 피곤한 인간관계를 거절하지 못한 데다가 개인의 사생활과 법적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후진적인 형법체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뫼르소가, 레몽을 괴롭히는 아랍인을 이유 없이(?) 쏴 죽이고 그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목은 이해가 안 되긴 하나 (억압된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이었을까?), 모든 사람들이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보여준, 아랍인 살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심함에 대하여 그를 비난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고 여겨진다.
1942년 작품이긴 하지만, 정치인이라도 그들의 아랫도리 일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소설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점이 바로 이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이라는,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의 숭고함에 대한 확신이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주 부유한 도시 아니면 이웃에 밥그릇 몇 개 수저 몇 벌까지 있는지 다 꿰고 살았던, 좋게 말하면 인심 후하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정에는 그리 착착 감기는 소설은 아니겠지만,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기독교의) 신, 위선적인 도덕, 자비 없는 사법체계에 나름의 솔직함과 무덤덤함으로 대응하는 뫼르소의 외로운 모습은, 살인이라는 그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법제도가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톨스토이의 '부활', 카프카의 '소송'을 연상시키는 '이방인'은 또한 (진실된 기독교의 사랑과는 구분되는) 위선적인 기독교적 도덕을 다룬다는 점에서 '부활'과, 관료제라는 세계 안에 사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다룬다는 점에서 '소송'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뫼르소가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적인 정서에서 불효라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자녀가 죽는 것이 아닌 존속의 죽음은 나이가 든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실이라 그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론은 뫼르소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에게 돌을 던질 자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