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 따위 대체 왜 읽어야 하는데?

명품 라벨 붙어도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들

문학청년이라고 하면 글 쓰는 재능 있는 젊은이라는 칭찬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물정 모르고, 쌀도 돈도 안 나오는,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몽상가라는 비난으로도 사용된다. 다음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서문 중 학자의 묘사이다.


그다음에는 옥스퍼드 대학생이 한 명.
대학에 입학해서 논리학에 입문한 것이 여러 해 전의 일이다.
그의 말은 갈고리 같이 말라빠졌고
본인도 여윌 대로 여윈 데다가 그 태도는 점잖기만 했다.
맨 위에 입은 외투는 낡아 떨어져
보기가 흉할 지경이었는데, 그 까닭을 알아보면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미처 성직을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세속의 벼슬을 노리고 탐낼 정도로 속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 이 학생에게는 그의 머리맡에
검고 붉은 빛깔의 표지를 씌워서 장정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철학에 관한 서적 스무 권쯤을 두는 것이
값진 승복이나 갖가지 악기를 갖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
이렇게 그 자신이 철학도였으나
연금술사가 못된 탓으로 상자 속에 황금은 별반 없었다.

-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문, 제프리 초서


예나 지금이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돈 없고 빽 없는 불쌍한 족속이었던 듯한데, 이렇게 홀대당하는 책과 문학이 사실은 여러 가지 장점과 순기능(교훈과 재미,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함양, 비판적 사고능력 배양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문학의 쓸모에 대해서 논한 글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작고하신 평론가 김현 선생님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김현 교수는 문학을 두고,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리고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드러내준다고 주장한다. 사실 김현 교수 생전의 학계는 사회주의와 이념 논쟁에 치우쳐서 문학의 정치성과 도구성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김현 교수는 격랑의 한국현대사를 살아가면서도, 순수하고 자유로운 문학정신을 꿋꿋하게 지지했으며 이것을 계간지 '문학과 지성'(나중에 '문학과 사회'로 바뀌었다)의 발간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은, 그러나, 문학 자체를 위한 문학에 반대하는 편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과 마찬가지로 이런 문학은 언어유희와 탐미주의에 빠지기 쉬우며 결국 우리가 왜 문학을 읽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학은 반드시 그 목적과 효용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독자에게 비판적 현실인식을 갖추게 하며 건강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술성과 건전함 두 가지를 아우른 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에 기울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기교를 많이 부린 글보다는 여성의 삶과 문제를 다룬 글들이 더 와닿으며, 개인의 내면을 파고든 책보다는 사회 이슈를 다룬 책이 더 훌륭하다고 느껴진다.


필자 나름의 잣대는 고전에도 적용되어서 고전이라고 무조건 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명품 딱지가 붙어있지만 비싼 가격표에 다들 아는 체만 하는 명품처럼, 고전 역시 제목만 언급되고 아무도 읽지 않는 구닥다리 헌책이 아닌가. 물론 그중에 훌륭한 작품들도 많이 있겠지만 제국주의 침탈과 궤를 같이 한 서구열강의 문화적 세력 확장 때문에 과대평가된 책도 있다고 생각되며, 문학을 비롯한 문화의 국제어가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였기 때문에 유럽어로 써지지 않은 제3세계와 아시아의 문학이 소홀히 여겨졌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한국의 국위가 선양되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국문학도 해외로 많이 번역되고 관심을 끄는 것 같다. 그러나 문학이 과연 이전 시대에서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영상이 문학을 대체하고 사람들은 시집이나 소설책을 읽는 대신에 넷플릭스와 티빙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대로 문학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문학의 서사와 사상, 그리고 생동하는 등장인물과 반짝이는 언어를 필요로 한다.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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