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본다고요?

문학과 영화의 행복한 만남을 꿈꾸면서

뉴욕대 영화이론과 로버트 스탐 교수는, 문학을 바탕을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이 각색영화를 원작보다 훨씬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각색 비평의 관습적 언어는 때로 매우 도덕적이어서 영화가 다소간 문학에 해를 끼쳐왔다고 암시하는 용어들이 많았다. 각색 담론에는 "불충실", "배신", "변형", "위반", "변질", "저속화", "모독"과 같은 용어들이 난무했으며, 각 단어는 특정한 비난의 의미를 담았다. "불충실"은 빅토리아조의 도덕적 엄격성을, "배신"은 윤리적 불신을, "변질"은 사생아적 불법성을, "변형"은 미학적 역겨움과 괴물성을, "위반"은 성적 위반을, "저속화"는 계급적 하락을, 그리고 "모독"은 종교적인 신성모독을 암시하거나 떠올리게 한다.

- 문학과 영화, 로버트 스탐 편집


스탐 교수가 지적했듯이 많은 각색영화들이 원작을 훼손시킨다는 비난을 받아왔으며, 사람들은 각색영화에서 원작과 다르거나 빠진 부분을 찾는 데에만 골몰하지, 영화의 영상과 소리, 그리고 편집을 통해 창조된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인 것이, 사람들이 원작을 기준으로 각색영화를 평가하면서도 사실은 영상에 더 익숙해서 책이나 문학은 잘 안 읽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듯이, 현대에 들어서 영상이 빠르게 문화를 잠식했고 영화는 이제 더 이상 문학의 시녀나 기생생물이 아니게 되었다. 영화가 대중성이나 파급력에 있어서 문학의 위치를 뛰어넘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먼저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접하고 그 후에 원작을 읽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노벨라이제이션'이라고, 원작소설이 없거나 만화 같이 다른 매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인기가 있을 경우 영화에 맞춰서 나중에 소설이 출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학은 일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주장하듯이 소위 '죽음'의 상태에 놓여있고, 평행구도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문학과 영화는 반드시 서로를 배척하고 경쟁해야만 하는 관계일까? 그렇지 않다. 문학과 소설은 각자가 가진 장단점으로 인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 즉 원작소설은 문자와 그것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서 이야기가 펼쳐지며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 등 깊이 있는 심리묘사가 가능하다. 반면에 영화는 몇 쪽에 걸친 배경묘사를 단 한 시퀀스의 영상을 통해 그려내며 등장인물이 화면에 나와서 시청자에게 직접 대사를 건넨다.


그렇다면 문학과 영화가 서로에게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일까? 항상 기발하고 신선한 소재를 찾아서 헤매는 영화의 입장에서는 문학이 영감의 보고이자 원천이 될 수 있으며, 인정에 목마른 문학의 입장에서는 영화화를 통해 더 많은 독자/시청자들을 만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한편 원작소설이 각색을 통해 영화화되면서 국가와 문화를 건너지르는 새로운 창작이 시도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서 19세기 영국 로맨스 소설 '오만과 편견'이 인도 발리우드에서 뮤지컬 '신부와 편견'으로 번안된 것이 그러하다. '신부와 편견'은 결혼을 둘러싼 가족관계가 리전시 시대 영국 못지않게 보수적인 현대 인도를 배경으로 여주인공 라리타와 다아시의 만남과 결혼을 그리고 있는데, 인도 마살라 뮤지컬 특유의 화려한 춤과 볼거리들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각색영화를 대할 때 줄거리와 사건 등이 원작과 얼마나 똑같이 재현되었는지를 보지만, 각색영화도 나름의 독립적인 창조물임을 감안할 때 그 평가의 기준이 꼭 원작에의 충실성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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