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도주처럼 성숙해 가는 삶

상실로 인한 글쓰기

남들이 보기에는 남편과 자녀가 없는 삶이 결핍으로 보일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가끔씩 외로움이 밀려오고 지금까지 잘살아온 건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딴 이야기지만... 내가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이나 '암행어사' 같은 사극들이 있었다. 꼭 그 사극은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극을 보면 여인네들(어염집 아낙이나 기생)이 (타지로 발령을 받았거나 첩을 거느렸기에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서방님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달이 휘영청 떠있고 구슬픈 국악이 흐르는 가운데 여인은 외로움을 담아 바느질을 하거나 시를 짓는다. 어린 마음에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외로움의 정서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꽤 익숙한 것이었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 말고 나에게 존재하는 또 하나의 막연한 욕망이 있었는데 글을 쓰는 것이었다. 국민학생 때부터 동화책에 빠져 지냈고 대학도 문과로 가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논문도 그저 요약 수준의 지리멸렬한 잡문을 써냈고 철학서적이나 유명 작가들의 소설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내게서는 아무런 글도 나오지 않았다.


책 쓰기를 포기하고 작가의 길도 포기하고(애당초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블로깅을 하면서 나는 내 삶과 내가 읽고 본 책과 영화 리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잘 쓴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가끔씩이라도 꾸준히 써낼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주어진 상실 덕택(?)이었다. 남편과 자녀가 없는 삶이 주는 여유와 독립적인 마인드 말이다.


물론 결혼하지 않아야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아니다. 상실로 인해 글쓰기가 가능케 되었다는 것은 일반론이 아니라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의 경우에 불과하다.


모든 글 쓰시는 분들께 끊임없는 영감의 발원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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