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철학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남자의 대척점에 있는 여자로서만 인식했다. 이 말인즉슨 나의 상황을 채워져야 하고 보완되어야 할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만화나 소설을 읽어도 로맨스물을 좋아했으며 진지한 책을 읽어도 주요 이슈나 주제보다는 남녀의 관계와 서사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청소년이나 젊었을 때에는 이성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스릴러나 추리물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많은 것을 볼 때 이것이 꼭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일종의 취향이면서 여성주의적으로 볼 때 내가 많이 미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아마도 마흔 즈음 나는 더 이상 남녀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이 재밌지 않아 졌다. 로맨스에 흥미를 잃었달까. 뭔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묵직하고 가치 있는 사고와 철학을 접하고 싶어졌다. 이때쯤 접했던 책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책이었다. 성경 역시 내 삶을 인도하는 등불이었고 그것이 가르치는 인생의 의미나 삶의 지혜도 가치 있었지만 나는 종교적인 경전 말고 뭔가 세속적인 지성의 자극을 원했다.
'제2의 성'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 준 책이다. 제1의 성, 즉 남자에 비추어서만 자신을 정의하고 존재 의의를 부여했던, 나의 의존적 정서를 깨닫게 해 주었다. 교육과 문화가 끊임없이 주입하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당위들. 그러나 그것을 깨달았음에도 나는 내가 이때까지 배운 여성성과 여자로서의 처신에 대한 몸에 익힌 습관들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진정한 여성성이란 남성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무시하는(남성 측에서는 이걸 남성혐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게 아니라 두 성이 독립적으로 평화롭고 아름답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정치적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인생과 운명에 관한 철학적 단상과 뒤섞은 책이다. 사실 이 책에는 네 명의 남녀 커플(두 커플 중 한 명은 가벼움을 추구하고 다른 한 명은 무거움을 추구하는 바람에 비극적이고 어긋난 결말을 맞이한다)이 등장하는데 이런 남녀 관계보다는 저자가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시키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나 아모르파티 같은 철학적 개념이 더 흥미로웠다. 철학을 소설 속에 쉽게 녹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철학 자체의 맛이 조금은 살아있다.
앞으로도 책을 더 읽고 싶지만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시간이 별로 없다. 언제까지 이 브런치를 하게 될지... 그래도 조금이라도 꾸준히 올려보련다.
오늘의 요지는 그리하여, 나는 여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서게 되었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