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공감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알고 있다

가끔 뭔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충동 속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박사수료를 할 정도로 가방끈 길게 배운 학구적 지식을 자랑하는 글을 쓰고도 싶고 자녀를 둔 기혼자들이라면 불쌍히(?) 여길지도 모르는 나의 50대 싱글의 삶에 대해서 쓰고도 싶다.


사실 삶을 살아가거나 글을 쓺에 있어서 나의 성적 정체성이 점점 사라져 감을 발견한다. 남편과 자녀, 시댁이 없는 삶도 그렇고 이성교제나 결혼도 완전히 물 건너간 아줌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내게 폐경기가 다가오고 나의 육체가 늙어가는 것보다 더 아쉬운 것은 내가 늙어감에도 나의 정신과 사고가 여성적 사고를 뛰어넘어서 더 자라나지 못하는 데 있다.


어제는 갑작스러운 독서의 허기를 느끼고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삶의 부조리에 맞서서 자유와 실존의 철학을 펼치는 카뮈의 치열하고 강렬한 글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낙담했다. 왜 나의 글에서는, 아니 왜 대다수의 여성의 글에서는 카뮈와 같은 지성의 번득임과 사고의 논리성, 그리고 정신의 각성과 깨달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나 스스로도 여성적 글쓰기의 특징으로, 개념을 지적으로 정의하고 분석하기보다는 인물들 간(특히 남성/가부장제와)의 관계를 파고든다고 분석한 바 있지만, 그리고 이것이 결코 남성적이거나 철학적인 글보다 못하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가끔씩은 너무 쉽게 술술 읽히는 글보다는 개념을 분석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는 글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이러한 충동이 현학적인 과시로 보일 수도 있다. 소설가 김현이 주장했듯이 글쓰기는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고 글쓰기를 예술이나 사상으로 보는 것은 노동에 불과한 글쓰기에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훈의 입장에서 본다면 삶의 구질구질한 현실에 불과한 글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과 가치관은 글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소통되고 자라난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여성으로서, 논리적이고 지적인 사고와 건강한 페미니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멋있는 책 한 권 찾아 읽을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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