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영화와 이혼한 심정이다

간단히 요약한 나의 지적 편력

나는 '과거에' 가방끈이 상당히 길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지만 영미문학, 비평, 영화 분야에서 이것저것 탐구하면서 나름 나만의 길을 찾아가려고 애썼다.


30년 전을 돌이켜보면 당시 배웠던 영미문학 정전들은 대부분 남성 작가에 의해서 쓰인 것이었고 나는 내 삶과는 별 연관성 없는 그 작품들을 대부분 지식의 차원에서 공부하였다. 사실 학과에 저명한 좌파 지식인이신 백모 교수님이 계셨지만 나는 문학 작품을 마르크시즘을 이용해 분석하는데 익숙지 않았다. 여성 작가의 작품을 가르치는 교수님도 계셨는데 당시에는 딱히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어서 수강하지 않았다. 후회가 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비평이론은 문학이나 철학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인문학적 분석 방법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옛 이론은 지나가고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며 또 옛 이론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대학 다닐 때에는 탈근대를 외치며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이 연구되고 인간으로부터의 탈중심화가 이뤄져서 환경, 생태, 그리고 비인간 시스템이 다뤄지고 있다.


영화는... 아... 정말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 최근에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각이라길래 한번 보았다. 영화는 개인적으로 트라우마가 커서 볼 수가 없다. 영화학 유학을 떠났다가 중퇴한 과거가 있어서 마치 영화와 이혼한 심정이다. 너무 사랑했지만 잘 알지 못했기에 이룰 수 없었던 꿈이다.


요즘에는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만 줄기차게 듣는다. 다시 내 가슴에 영화의 꿈을 부풀게 해 줄 명작이 있다면 추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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