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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는 말들

by 로즈릴리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원 산책을 했다. 평범하게 보이는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공부가 힘들어 괴로워서 피우는 거야? 호기심에 겉멋내고 싶어 피우는 거야?”


물어보고 싶지만, 물을 수 없다.


“이유야 어떻든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안 피웠으면 좋겠다.” 말해주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


꼰대 어른의 오지랖 같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요즘 청소년들은 너무 무섭다. 자칫 끼어들었다가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비둘기들, 몸이 통통 비대해진 비둘기들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공원을 점령하더니 이제 아파트 근처까지 날아와 자리를 잡았다. 자동차가 지나가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침 출근길이나 퇴근길 공원 옆 도로에 내려앉은 비둘기들 때문에 교통 혼잡이 일어날 정도다. 날개가 있는데 날기를 멈춘 듯 비둘기들에게 묻고 싶다. 날 수는 있는 건지? 며칠 전에는 기어이 비둘기 한 마리가 도로에서 로드킬 당하여 비명횡사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를 피해 나는 그늘을 찾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살며시 펼친 책에서 방금 튀어나온

글자처럼 길고 꼬불꼬불 가느다란 개미들이 어디선가 줄을 맞춰 나왔다. 징그럽고 싫지만 싫다고 말할 수 없다.

걔들은 어차피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한낮의 뜨거운 더위에 생존을 위해 먹이를 찾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부지런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베짱이처럼 쉬고 있는 인간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 싫으면 싫은 사람이 떠나야 하는 법 그늘과 의자를 개미에게 내주고 자리를 떴다.



모기가 너무 싫다. 저녁 무렵이 되면 도둑처럼 몰래 나타나서 나의 피를 강제로 헌혈해 간다. 싫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어느새 나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 버린다.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모기도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저녁 늦게 간식을 먹고 부스러기를 치우지도 않고 뒷정리도 하지 않은 남편, 묻지도 않고 물어본 적 없지만,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혹은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냐?” 고 혹시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ㅜㅜ



공모전에서 왜 떨어졌는지 묻고 싶다. 심사위원들에게 구체적인 이유를 묻고 싶지만 알려주지도 않고 물을 수 있는 코너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냥 체념하고 만다. 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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