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리, <편집자의 사생활> 리뷰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는 무수한 손길이 닿는다. 원고를 쓰는 저자는 물론이고, 책 전체를 구성하고 다듬는 편집자, 책의 비주얼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더 많은 독자가 책을 만나도록 애쓰는 출판 마케터, 종이 위에 활자를 정밀하게 옮기는 인쇄소 직원의 손길까지. 특히 편집자는 '책'이라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그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자 대부분은 책 표지에 적힌 저자의 이름만 기억할 뿐, 그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편집자의 존재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편집자'라는 직업에 막연한 호기심을 품고 있는 독자에게 고우리 작가의 <편집자의 사생활>은 끌림을 준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저자가 생생하게 풀어낸 업무 일지를 통해 편집자 일의 매력과 고충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저자의 솔직하고 가감 없는 화법을 통해 그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 책을 채우고 있는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에서 출판을 향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일에 대한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편집자 지망생들에게 귀중한 참고가 되고, 동시에 책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하다. 다만 책의 헐겁고 단조로운 구성과 일부 에피소드의 깊이에서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간혹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상 나열에만 그치는 몇몇 에피소드들에서는 출판에 대한 이렇다 할 저자의 통찰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독자가 저자의 일상에서 다른 사유로 이어갈 여지가 거의 없도록 쓰였기 때문이다.
좋았던 점: 솔직함과 경쾌함이 빛나는 직업 에세이
<편집자의 사생활>에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매력은 저자의 솔직함이다. 고우리 작가는 편집자로서 15년의 커리어를 쌓아오며 겪었던 경험들을 감추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풀어낸다. 1인 출판사 이름 짓기부터 택배 포장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저자가 마주했던 현실적인 도전을 생생히 보여준다. 흔히 '편집자' 하면 전문적이고 진지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 책에는 한 사람의 직업인이 겪는 고군분투와 실수가 경쾌하게 그려져 있다. 독자들은 인간적인 저자의 모습을 통해 편집자의 세계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가벼운 수다처럼 읽히는 고우리 작가의 글은 한편으로 그 속에 묵직한 통찰 또한 담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쾌하지만 일을 대하는 저자의 고민은 가볍지만은 않다. 편집자로서 실력 부족을 자각하거나, 담당하는 작가에게 원고를 지나치게 납작하게 다룬다는 평가를 들었던 순간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저자가 직업적 성장을 이루어낸 과정 또한 엿보게 된다.
책에서 저자는 '내가 원고를 예쁘게 다듬는지, 엉망으로 일그러뜨리는지 스스로 가늠하기 어려울 때, 결국 그 답은 작가와의 소통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편집자가 단순히 글을 다듬는 기술자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직업임을 보여준다. '편집은 글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본질을 짚어낸 듯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편집자라는 직업을 치열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재발견하게 된다. 이는 저자가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독자와의 거리를 좁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쉬웠던 점: 흐릿한 구성과 에피소드 간 편차
<편집자의 사생활>은 저자의 솔직한 단상을 가볍게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챕터 구분이 흐릿하고, 독자가 저자의 통찰을 통해 사유할 수 있는 대목이 책 전반에 걸쳐 균형 있게 배치되지 않은 부분은 이 책의 약점이다.
이 책은 기획이 별로 치밀한 편이 아니다. 248페이지로 이뤄진 책은 추천사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두 개의 챕터로 나뉜다. ‘Season 1: 편집자가 사장?!’은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저자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이고 36개의 꼭지가 담겨 있다. 편집자 커리어 전반에서 얻은 통찰을 기록한 ‘Season 2: 편집자의 사생활’은 23개의 꼭지로 구성됐다. 하지만 시기상의 범위 차이를 제외하면 챕터 구분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Season1과 Season2 모두 편집자 일을 둘러싼 저자의 생각을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총 분량에 비해 꼭지 수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고, 글 하나가 평균 4페이지 정도로 짧다. 저자가 기존에 작성했던 SNS 글들을 책 한 권 분량으로 모은 뒤, 약간의 추가 꼭지를 더해서 엮어낸 듯하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계속 뭔가 내용이 전개되려다 흐지부지 끝나버린다. 이런 글들은 특히 첫 챕터에 몰려 있는데, 편집자 일과 출판 업계에 대한 사유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편적인 일상 기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 깊은 통찰을 기대하는 독자는 글의 밀도가 비교적 높아지는 후반부에 진입하기 전까지 심드렁할 가능성이 높다.
편집자의 솔직한 일상을 다룬다는 기획 의도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독자는 일상에서 출발한 저자의 직업적인 통찰을 읽고 싶은 것이지, 표면적인 일상 그 자체가 궁금하지는 않다. 일상적인 글 모음이 ‘책’으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개별 에피소드가 전체를 잇는 기획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점은 이 책을 내놓은 저자와 출판사가 가장 잘 알고 고심했겠지만, 그 결과물이 안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가벼운 농담 같은 말투지만, 맹렬한 위트와 격렬한 사유를 똑같은 변의 길이로 담고 있다' 책에 실린 추천사 중 하나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지만 '똑같은 변의 길이'라는 대목에서 살짝 갸우뚱하게 되는 평이다. <편집자의 사생활>은 조금 더 치밀한 기획과 만듦새가 뒷받침됐다면, 더 많은 독자에게 유익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