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한솔, <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 리뷰
브랜드 마케터 위한솔의 첫 책 <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는 기록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찾아온 과정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에세이다. 광고대행사와 IT 기업 등 다양한 현장에서 마케터로 일해온 저자는, 바쁜 일상에도 틈틈이 써온 글들을 통해 ‘나다움’의 의미를 되짚는다. ‘이름력’, ‘고유성’ 같은 핵심 키워드들은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책은 “대단한 철학을 펼치기보다 작은 용기를 건네고 싶다”는 저자의 말처럼, 번뜩이는 인사이트보다는 성실한 삶의 태도에 관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질문들을 다루고 있어 독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단정한 문장들에는 저자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다만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 ‘기록’이 저자의 구체적인 경험이나 변화의 과정으로 충분히 풀어지지 않은 지점은 아쉽다.
좋았던 점: 담담하게 전해지는 올곧은 삶의 태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 그 자체에 있다. 저자는 일상 속 단면에서 발견한 고민과 깨달음을 차분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했었지' 하고 자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구나 살아가며 마주하는 중요한 질문들에 자기만의 답을 찾아보라고 저자는 조용히 권한다. 예컨대 자신의 정체성을 '소속 대신 이름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해 보자는 이야기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울림을 준다.
'나다움'에 대한 저자의 접근도 눈에 띈다. 책은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 대신, 경험과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 가자고 제안한다. '오늘의 내가 느끼는 나를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내가 나타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구절은, 정체성을 고정된 본질이 아닌 유연한 흐름으로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확고한 나’를 찾으라고 독려한다면, 이 책은 ‘흔들리되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특별한 정체성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기록을 통해 매일 조금씩 스스로를 다듬어가면 된다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을 대하는 정석에 가까운 태도가 책 전반에 흐른다. 저자는 '무엇을 할까'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지름길을 찾기보다 꾸준하게 걷고, 늘 스스로 'Why'를 되묻는 습관을 들이자고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올곧은 태도에 관한 자기계발서로 읽힐 정도다. 번뜩이는 인사이트와 에너지 넘치는 실행력보다는, 진득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에게 더 잘 맞을 책이다. 기록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 고민의 틀을 제공한다.
아쉬웠던 점 1: ‘좋은 말 모음집’처럼 느껴지는 평이한 구성
개별 글 단위로는 옳고 따뜻한 말들이 많지만, 책 전체의 구조와 밀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챕터별로 다른 제목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소재만 조금씩 다를 뿐, 엇비슷한 글들이 흩어져 있는 인상을 준다. 일상에서 얻은 인사이트 중심으로 쓰인 글들이 서로를 보완하거나 확장하지 못한 채 병렬적으로 나열되며, 전체 흐름을 단조롭게 만든다.
전개 방식이 단순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건 저자의 관점과 매력이다. 하지만 마케팅, 광고 업계 출신 에세이스트들이 자주 다루는 키워드(일상, 기록, 성장, 나다움 등)를 익숙한 결 안에서 풀어가는 데 그칠 뿐, 저자 고유의 해석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들도 다수 등장하긴 하나, 개별 글의 주제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며 생생한 서사나 개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가볍게 술술 읽히는 장점은 있지만,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도 크게 놓치는 부분이 없을 것 같은 내용이다.
다소 전형적인 소재를 택했더라도, 충분히 그 안에서 저자만의 관점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가령, 서로 다른 글에서 제시되는 ‘그만두는 용기’와 ‘꾸준한 고집’은 모두 삶에 필요한 태도지만, 방향성이 다른 가치다. 그 사이에서 저자가 어떤 고민과 판단을 거쳐 나름의 균형에 도달했는지가 제시됐다면, 저자의 고유성이 한층 설득력 있게 전달됐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가치가 각각의 맥락 안에서 전형적으로 다뤄질 뿐, 이를 가로지르는 질문은 부재하다. 물론 이는 사례 하나일 뿐이지만, 비슷한 아쉬움이 책 전반에서 느껴진다. '나다움'과 '고유성'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런 약점은 더 도드라진다.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할지에 대한 고민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전달 방식이 밋밋하면 독자에게 오래 남는 성찰로 이어지기 어렵다. 전반적인 구성과 개별 글의 전개 방식에 더 깊은 고민이 있었다면, 책의 인상이 훨씬 깊어졌을 것이다.
아쉬웠던 점 2. 이거 ‘기록’에 관한 책 아니었어?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기록’이다. 제목부터 그렇고, 서문과 추천사에서도 ‘기록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성장한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다 보면, 기록 그 자체에 대한 탐구는 의외로 적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삶을 변화시킨 ‘기록의 힘’을 보여주는 서사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기록'은 자주 언급되기는 하지만 좋은 가치를 전하는 매개일 뿐, 이 책의 핵심 주제로 충분히 입체화되진 못했다.
기록이라는 테마를 내세우는 책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이나 변화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들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록은 저자의 일상적 감상을 담아내는 그릇에 머무른다. ‘쓰다 보니 쓸 만해졌다’는 제목이 암시하는 가능성, 축적된 기록이 어떻게 저자의 세계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서사는 오히려 희미하게 처리된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기록의 쓸모를 직접 체감하기보다, 저자의 단상들을 따라가며 그 의미를 유추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물론 삶을 성실히 바라보는 태도와 단정한 문장에는 분명 진정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록’이라는 테마로 구체화되기에는 이 책이 제공하는 서사와 통찰이 다소 부족하다. 제목이 암시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