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등불로 다시 일어나는 삶들

작은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 한 주의 기록

by 간달프 아저씨

세상의 힘 앞에서 작아지는 날들, 그러나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


새벽을 깨우며 마음을 다해 함께 달리던 형제가 있었다. 말씀을 암송하고, 서로의 삶을 붙들어 중보하며 조금씩 세워져 가던 영혼이었다. 그런데 내가 잠시 말씀 세미나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흐름이 끊겨 버렸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더니 결국 공동체를 떠났다.
가슴 한쪽이 먹먹하게 아렸다.
그러나 결국 그 마음까지도 하나님만이 다시 일으키실 수 있음을 안다.
나는 그 사실 앞에서 잠잠히 서 있을 뿐이다. 기도하는 손


불안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뜻밖의 순간들


단꿈아동 중에는 쉽지 않은 환경을 견디며 자라는 아이가 있다. 다둥이 가정, 아버지의 폭언과 주사, 쌓여버린 상처들.
나는 그 아이에게 늘 말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짝) 사랑스럽고(짝) 소중한
하나님의 귀한 아들(짝) 00이 화이팅!”

그러던 어느 날, 생일파티 자리에서 그 아이는 갑자기 식탁 의자를 넘어뜨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를 향해서도.
순간 당황스러웠다. 모든 아이들이 보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 뒤엔 상처와 긴장의 일상, 늘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죄송하다며 찾아왔다.
나는 그저 그 가정을 축복하고 기도했다.

며칠 뒤, 그 아이의 동생이 공부방에 오기 시작했다.
형에게 눌려 의기소침한 아이였다.
나는 아이가 마음껏 뛰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피아노를 마음껏 치게 하고, 교회와 사무실을 함께 둘러보게 했다.
희망의 등을 선물하며 말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야.”

그날 이후, 아이는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인사한다.
그리고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목사님… 보고 싶었어요.”

그 말 한마디가, 내가 사역을 버티게 하는 은혜였다.


공동체가 바뀌어 가는 계절


내년부터 장년공동체에 변화가 찾아올 것 같다.
필요성은 여전히 크지만, 사역의 무게는 한동안 나를 많이 지치게 했다.
지금은 기도 가운데 다른 길을 향해 깊이 인도하심을 느낀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다면, 나는 또 한 번 순종해 걸어갈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 그리고 공동체의 기쁨


운전면허 도전에 두 번이나 실패한 성도가 있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합격.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다.
말씀 안에 뿌리내려가는 부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주일에는 우리가 중보하던 E국 선교사님이 방문했다.
무슬림권에서 사역하며 지쳐 있던 몸과 영혼이 느껴졌다.
그분의 안식년이 진짜 쉼이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했다.

며칠 전에는 선교사 자녀(MK)들도 찾아왔다.
노숙인분들을 위한 이불 전달 문제로 온 방문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깊은 교제의 시간이 되었다.
함께 식사하고, 다시 희망의 등을 건네며 축복해주었다.

아프리카로 떠나는 한 자매도 찾아왔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복음 때문에 떠나는 발걸음은 언제나 경건한 울림을 남긴다.


내가 의지해야 할 이름은 오직 하나


‘소망을 찾는 이’ 사역은 시작부터 무기가 없었다.
창이나 검도, 세상의 영향력도 없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복음의 능력과 성령님의 인도하심만으로 걸어온 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누구나 유혹을 느낀다.
다른 이름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
세상이 더 커 보이는 순간들.

골리앗 앞에서 작아지고,
3만 전차의 숫자에 흔들리고,
이세벨의 850명 제사장 앞에서 주눅들고,
은과 금의 무게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순간들.

그러나 결국 깨닫는다.
세상의 힘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윗, 요나단, 엘리야, 베드로, 바울…
하나님은 언제나 ‘작은 자’의 손을 들어 사용하셨다.

결국 나는 이 고백으로 돌아간다.

“주님, 세상의 힘 앞에서 작아지는 저를 붙잡아 주소서.
주님의 주되심이, 창조주 되심이, 구원자 되심이
제 마음을 다시 다스리게 하소서.
오늘도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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