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한쪽 창문은 열어 두시는 주님
새 꿈공원예배에는 세 주 동안 단풍비가 내렸다.
색색의 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공원을 덮을 때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다.
찬양 ‘비 준비하시니’가 울려 퍼지는 순간에는 마치 주님께서 단풍 꽃송이를 은혜처럼 내려주시는 듯했다.
그때 마음에 선명히 들려온 음성,
“내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이번 주도 육개장은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봉사자들은 제대로 식사하지 못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제주에서 도착한 귤 10박스는 공원예배와 쪽방사역, 여러 교회에 두루 나누어졌다.
백설기 떡을 보내온 분도 있었다.
누군가의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사랑이 되었다.
지난주에는 한 목사님의 권유로 하루 종일 말씀세미나에 참석했다.
강의는 다양한 관점을 다루었지만 복음의 본질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세미나 기간 동안 입안에 생긴 상처가 낫지 않아 저녁 시간에 약국을 찾았다.
문을 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약사를 위한 주님의 계획이 있을까?’
신앙을 물었을 때, 그는 몇 년 전까지 교회를 다녔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손을 잡고 축복하며 기도했고, 믿음의 회복을 권면했다.
세미나 장소 숙소에서는 방을 청소하던 룸메이트와 마주쳤다.
작은 음료 하나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화를 이어가다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고, 그 자리에서 영접기도를 드렸다.
예수님이 마음에 계시다는 고백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믿음의 언니와 함께 교회를 다녀보라 권했다.
주님은 그 두 영혼을 만나게 하시려고 평창까지 나를 보내셨다.
키르기스스탄 예배에는 요즘 청년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섬기고 계신 선교사님은 예배 전에 청년들과 일대일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
몇 해 전, 무슬림이던 누○아 자매가 암 치료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통역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고, 얼마 후 주님의 품에 안겼다.
최근 주일에는 누○아 자매의 아들과 조카가 예배에 참석했다.
환영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소망을 담아 복음을 전했다.
영접 여부는 조심스럽게 거절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묻지 않았다.
함께 눈을 감고 영접기도를 드렸고, 그 순간을 주님께 맡겼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그들을 주께로 이끌 것이다.
키르기스스탄 청년들은 때때로 비자나 학비 문제로 도움을 청한다.
어제는 두 자매가 한국어학당 등록금이 부족하다며 연락해 왔다.
두 사람에게 각각 100만 원씩 송금했다.
그들은 눈물로 감사하며 언젠가 꼭 갚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청년들은 언젠가 키르기스 땅을 변화시킬 주님의 용사들이라는 것.
지난달 재정은 많이 부족했다.
그때 주님께 간구하던 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예기치 않은 헌금이 채워졌다
섬기던 92세 어르신 한 분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떠나시며 마지막 헌금을 성도님에게 맡기셨고, 그 딸이 전해주었다고 했다.
그 헌금은 교회에 드려졌고, 특별히 청년예배를 위해 쓰이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세워지지 않은 청년들이지만, 그 헌금을 통해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미 마음을 두고 계심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마음에 울리는 음성,
“내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