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언어로 잊힌 기억을 속삭여 주던 내 동네의 이름
“경축 개발구역 확정” 플래카드가 걸린다. 사람들의 환호가 들린다.
날이 갈수록 사회적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바쁜 일상 속 현대인들은 ‘집에서 살아간다’라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 자산가치를 증명하는 ‘도시 유목민’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오랜 도시들은 무너져 내리고 ‘내 집 마련’이 입에 오르내린 지 오래. ‘내 삶을 위한 집’을 고민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요즘 집을 보러 모델하우스에 가면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여기 식탁, 여기에는 텔레비전, 저기에 장롱 놓으면 딱 맞아요."
보기 좋은 가구 배치. 이는 우리네 삶이 규격화 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정말 삶의 역사 없는 복제도시만이 이 시대 행복의 답일까?
삶을 위한 집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길고양이가 잠시 잠을 청하던 대문 지붕, 골목 계단에 앉아 동네 친구와 담소 나누던 시간, 매일 아침 현관 앞에 고개 내밀던 따뜻한 햇볕, 가족들과 거실 바닥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저녁을 먹던 기억. 사소한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다음 달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는 내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예전부터 아파트가 싫다며 몸서리를 치곤 했다. 별 이유는 없다. 차가워 보여서 무섭단다. ‘이제 우리 어디서 만나지?' 사정에 의해 결국 이사를 결정했지만, 친구는 온종일 뾰로통해 보였다.
오랜 친구들이 점점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함께했던 곳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요즘. 잘게 부서진 나의 옛 기억 그곳은 마천루가 대신한다. 느린 언어로 잊힌 기억을 속삭여 주던 내 동네의 이름은 사라진지 오래다.
“경축 개발구역 확정”, 그 나름의 온기를 전해주던 지난 나의 부산함이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