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인지 함부로 숨 쉬고 있는 반려 생물을 들이지 못한다.
호스피스 병동. 항암치료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들이 통증 완화를 기대하며 모여있는 영적 치료 공간이다. 위암 말기.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 판단했던 나의 아빠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4개월간 생활했다. 그곳에 있다 보면 자원봉사자들이 요일별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병실을 방문했다. 매주 목요일은 보호자들을 위한 꽃꽂이 수업. 함께 병간호를 했던 고모는 왜인지 그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한층 화사해 지는 맞은편 창가 자리. 물도 주고 햇빛도 쬐어 주며 이따금 쌓인 먼지도 닦아주던 사람들. 꽃봉오리의 꿈틀거림과 생기. 그에 비해 회색의 대리석 창틀 위 작은 먼지 한 톨 두 톨만이 내려앉아있던 우리 자리.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자리가 내 눈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짧은 적막을 걷어내고 말을 꺼냈다.
“꽃도 보고 하면 기분 좋지 않아요? 자리 지켜야 돼서 그런 거면 제가 여기 있을게요. 고모도 꽃꽂이 수업 다녀오셔도 돼요.”
아빠가 잠든 사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고자 건넨 한마디. 생각지 못했던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냥 보는 게 좋아. 여기서 키우던 것들은 금세 시들어 버리는 게 영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
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곳에서는 저 작은 생명에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내 앞의 환자가 벌써 세 번째 바뀌었다는 사실을. 집에 가기 전 잠시 데스크에 들렀다. 친했던 간호사 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다음 꽃꽂이 수업에는 금세 시들지 않는 식물로 수업을 진행해 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긍정의 답변을 들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자원봉사자들이 끌고 온 카트에는 겨우 나의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작고 비죽비죽한 식물이 있었다. ‘이오난사’란다. 잘 시들지 않고 먼지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요놈 참 귀엽네” 화사하지도 않고 낯선 모습에 썩 내켜하지 않던 같은 병실의 보호자들도 작고 귀여운 크기에 금세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자원봉사자의 말에 따라 화분에 초록의 이끼를 덮고 자갈을 올려 이오난사의 집을 완성했다. 고모는 그 작은 생명을 조심히 창가에 올려 두고 사진도 찍다가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창가에 움튼 작은 생명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저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 죽을지 고민하지만 막상 죽음이 목전에 다가온 환자들은 어떻게 하루라도 더 살아갈지 고민한다. 먼지를 먹고사는 ‘이오난사’. 사소한 기억들을 먹고 일 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시한부 선고가 무색하게 삼 년을 버텨온 아빠가 생각난다. 병실에 누워 자신이 태어나 첫 학교를 들어서던 순간,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두 발, 두 딸들의 생의 첫 걸음마 등을 추억했으리라.
지금 그 작은 생명은 우리 집의 먼지를 먹고 자란다. 사소하고 금세 휩쓸려가 버리는 것을 먹고 숨을 들이쉬고 있다. 집으로 병원의 짐을 옮기며 버릴까 생각했었지만 지난날이 생각나 애써 숨 쉬고 있는 것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 기억이 있던 이후 난 사소한 것들. 누군가에게 소중히 숨 쉬고 있을 그것들을 쉬이 잊지 못한다. 함부로 숨 쉬고 있는 반려를 들이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