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메일러 <밤의 군대들>
나의 첫 기억은 잃어버린 것에서 시작했다.
나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원주에서 살았을 때였고 동생이 적어도 걸음마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세 살 이후, 다섯 살 이전일 것이다. 당시 나는 뽕나무가 둘러싸고 있던 놀이터 옆에서 자주 세발자전거를 탔다. 평범한 세발자전거였다. 부모님에게 선물 받은 기억이 없으니 아마도 다른 아이가 쓰던 걸 물려받았던 물건이었을 거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황토색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내가 탈 일이 없던 뒷좌석은 낯선 캐릭터가 그려진 비닐쿠션으로 덮여 있었다. 그 뒷자리에 가끔 어린 동생을 태우고 동생의 무게를 페달로 밟아내는 걸 좋아했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놀이터까지 동생을 태워 줄 때면 마치 멋진 레이싱 선수라도 된 것 같았다. 물론 어른들이 봤을 때 시원시원하게 달리진 못했을 거고, 오히려 페달을 밟는 발힘이 약한 탓에 느릿느릿 나아갔을 테지만, 어린 내가 누군가를 태우고 간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던 건 아닐까.
물려받은 자전거라 이리저리 쿵쿵 찧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던 걸 보면 물건 자체에 대한 애착은 약했다. 그래도 세발자전거를 타며 뒤편에서 들리던 동생의 해맑은 웃음소리만큼은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층짜리 낮은 아파트였기에, 세발자전거를 집까지 들고 갈 순 없었다. 세발자전거를 다 타고나서 집에 들어올 때면 항상 아파트 1층 안쪽에 있는 어른들의 커다란 자전거들 옆에 세발자전거도 나란히 놓았다. 그 주차 의식은 내가 사뭇 의젓해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의 세발자전거 데뷔는 그러했던 것 같다. 세발자전거를 내 것이라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온 날이었다. 자전거는 잘 갖고 왔냐는 엄마의 물음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세발자전거를 일층까지 가져온 기억이 없었다. 심지어 어디에 놓고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창밖을 내다보며 휘휘 둘러보던 아빠가 저기 있네, 저기, 라고 말씀하셨다.
오층 부엌 쪽 창가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내가 나란히 서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창틀이 높아서 까치발을 선 채로 아빠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놀이터 옆 길가에 눈에 익은 세발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세발자전거였다. 얼른 가서 가져 와, 다른 애가 가져가겠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하지만 혼자 나가는 건 싫었다. 분실물을 혼자서 찾으러 간다는 게 낯설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버려둔 걸 다시 찾으러 가야 한다니. 세발자전거가 한없이 멀어보였다. 우리 집과 세발자전거 사이가 차를 타고 가야만 닿을 수 있는 유아원처럼 멀게 느껴졌다. 같이 가면 안 되냐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얼른 가서 가져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하염없이 세발자전거를 내려다보았다.
그때였다. 한 여자아이가 세발자전거에 다가갔다. 저 애가 가져가겠는데, 괜찮아? 아빠가 예언처럼 말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달려 내려가 본들 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사라져버릴 것이다. 행여 저 아이를 따라잡는다 해도 세발자전거가 내 것이라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오층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 자전거 내 건데, 혼자 중얼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저 자전거는 내 것이 아니었는걸. 어어, 가져간다. 아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까치발을 더 세워보았다. 여자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세발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그 아이가 페달을 밟아서 다른 동 아파트로 사라질 때까지 망연히 쳐다보기만 했다. 엄지발톱이 아파왔다. 으이구, 엄마는 낮게 읊조리고는 저녁밥 준비를 하러 부엌에 들어가셨다. 생선구이 냄새가 풍겼고, 나는 영영 세발자전거를 찾을 수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지만 부모님은 물려받은 자전거라 잃어버려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던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이후 나에게는 새로운 자전거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나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던 여자아이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린 마음에 억울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잃어버리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던 것이었다.
이후, 잠 못 드는 밤이면 그날의 지독하게 용기 없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깊은 밤 너머에서 진격하는 군대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다 이윽고 입술을 꾹 깨문다. 그러면 반대편에서 포악하고 잔악한 군대가 울컥 쏟아지듯 몰아쳐온다.
깊은 밤 건너편에 있는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부리나케 현관 밖으로 뛰쳐나간다. 오층이나 되는 계단을 훌쩍훌쩍 뛰어 한달음에 일층까지 내달린다. 놀이터를 지나쳐 나의 세발자전거에 앉으려는 아이를 붙잡는다. 이 자전거는 내 거라고, 내가 잊고 갔던 거라고 말한다. 아이는 뭐라고 반박하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지도 않고 나의 세발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언제나처럼 일층에 주차를 하고 내일도 세발자전거를 탄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그날 이후로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않게 되었다’기보다 ‘않으려 했다’에 가깝겠다. 행여 아주 사소한 물건이라도 잃어버리면 자꾸만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초조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던 그 시절의 나를 타박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내 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혼나지 않도록, 밤의 군대처럼 포악하게 몰려오는 그 감정에 함락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고, 그럴수록 자꾸만 뭔가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밤의 건너편에 있는 나를, 될 수 없었던 나를 몇 번이고 불러내면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