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 <15소년 표류기>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명절이 되면 친척 아이들끼리 모여 서로가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서로’라고는 하지만 여섯 살 많은 언니가 주로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듣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나란히 마주 대고 언니가 나직하게 읊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몸서리를 쳤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고, 그 간극 덕분에 몇 번이고 이야기해 달라고 조를 수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절정에 달할 때, 소리를 지르면서 방문을 박차고 나가면 집 안 가득 고소한 육전 냄새가 고여 있었다. 이제 막 부친 육전을 제사상에 올리기도 전에 집어 먹다 보면, 혀끝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고기와 계란 맛에 방금까지 방 안에서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잊을 수 있었다. 멀리에서 듣는 일은 금방 잊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언니가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명절이 되어도 얼굴 보기가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내가 이야기하는 쪽이 되었다. 나는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듣거나 책에서 읽었던 온갖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씩 거짓말을 더하기도 했다. 거짓이 들어간 기분 나쁜 이야기일수록 동생들은 눈을 빛냈다. 특히 실재하는 사물이나 지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오면 동생들은 소리까지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끔찍한 주술이 걸린 것이 아직도 존재하다니! 그 증표를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다니! 동생들이 놀라면 놀랄수록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고, 묘사도 상세해졌다. 앞뒤가 맞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것들이라 끝도 없이 무서워질 수 있었다.
어느덧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구슬픈 사연이 있는 것들로 변했다. 학교 가는 길에 매일 지나쳐야 했던 동산은 어느 공룡의 멈춰버린 시간이 되었고, 건너는 사람을 본 적 없는 육교는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수 없는 미로가 되었다. 놀이터의 시소가, 학교의 낡은 동상이, 집 앞에 단 높이가 다른 계단이 그랬다.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내가 겪어본 적 없었기에 끝도 없이 무서워질 수 있었다.
동생들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육전을 먹으러 방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나는 방 안에 앉아 께름칙한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혼란스러웠다. 어디까지 내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한밤중 내 방 침대에 누워 나는 표류하곤 했다. 특히 2층 내 방 창밖에 보이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문제였다. <전설의 고향>에서 보았던 ‘깍짓손’ 이야기에 멋대로 살을 붙여 지어냈던 것이었는데, 그 뒤로 나는 창밖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밤마다 손과 손이 얼기설기 나무기둥을 부여잡고,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끊어질 듯 끈질기게 이어지고, 까만 낙엽이 드문드문 그 나뭇가지에 매달려 흰자 없는 눈동자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멀리 있던 이야기가 이제는 이야기가 아니게 될 때. 그때 느꼈던 공포란.
목덜미를 자꾸 만졌다. 나와 다른 온도의 무언가가 내 목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불 밖으로 발이 나오는 것조차 무서워져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후끈해진 볼을 문지르며 다짐했다. 이제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내년부턴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년도 되기 전인 그해 추석, 어느덧 아이들은 자라서 무서운 이야기를 시시하게 여기게 되었고, 새로운 놀이를 찾아냈다.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듣던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 새로운 놀이에 바로 적응했다.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친척들과는 명절에 모이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와 보내고 있을 것이고, 어떤 이야기든 오가겠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지난 설에는 세 근이나 되는 육전을 묵묵하게 부쳤을 뿐이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내 거짓 이야기를 기다리는 소년소녀들이 없는 명절, 간을 보기 위해 기름진 육전 귀퉁이를 조금 잘라 우물우물 씹으며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표류도 이제 끝난 걸까?
글쎄,
내가 있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해?
지금도 기억하는 무서운 이야기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