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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는 소리없는 아우성

폭삭 속았수다

by 바세이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중에 단연 돋보이는 역할은 부상길이었습니다.

일명 학씨 아저씨라고 하죠.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나 뭐 되는 사람으로써

무시와 경멸 그리고 겁박을 주는 말로

학~~씨라는 말을 써서 그렇습니다.

부상길이 식구들에게 늘 하는 말로

‘이것들은 나 때문에 쌀밥 먹는 줄을 몰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결국 학씨 아저씨의 아내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혼을 통보합니다.

이제 당신 쌀밥 안 먹어도 된다고 하면서요.



학씨는 쌀밥을 먹여주는 지배자로써

복종을 강요하는 파시스트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현대의 회사와 직장인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연히 고용관계는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된 임금과 노동을 교환하는

대등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절대 대등한 관계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직 동등한 관계인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때는

학씨 부인처럼 자기 갈 길을 찾아 관계를 끝낼 때입니다.






같은 일을 30년 넘게 하고 있지만

일터는 여러 번 바꾸었습니다.

첫 직장에서 20년을 보냈으니

참을성이 부족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보상도 크고 조건도 좋은 기회가 있었기에

외국으로 이주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국경이 닫혀버렸죠.

재계약의 조건과 일하는 여건이 너무 나빠져서

두 번째 사표를 던졌습니다.


백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그동안 일 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신이 나기도 했고 때로는 거지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는 내내 그렇게 극적인 양가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던 것들을 거침없이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새로운 일터를 다시 구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은 기뻤지만

회사 아이디를 목에 차는 순간,

들판을 떠돌던 들개가 앞마당에 묶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가장 힘이 드는 때는 언제일까요?

아마도 차별을 받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때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주인을 물어 버릴 수는 없고

결국은 목줄을 끊고 그 집을 떠나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대주라고 하신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른뺨을 맞았다는 것은

오른손을 쓰는 사람에게 손등으로 뺨을 맞았다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그런 행위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훈계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학씨 아저씨처럼 학~씨 너 뭐 되? 하면서

오른손등으로 하인의 오른뺨을 때리는 거죠.

그런데 이때 하인이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주제를 모르고 설쳤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왼뺨도 때리시오.

라고 말하며 왼뺨을 내어준다면

주인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어디 이게 감히!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결국 왼뺨을 내어준다는 것은

대등한 관계로 올라서면서 동시에

‘당신은 나의 존엄을 해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맞서서 존엄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돈이 귀천을 가르는 시대입니다.

특히 회사와 직원은 돈으로 얽힌

주종관계인 것 같습니다.

노동을 제공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는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종종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대등한 계약 관계인 것을 일깨워 주는 때가 있습니다.

사직서가 오가는 때입니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나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폭삭 속았수다에서

애순이가 꼼짝없이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을 깨닫고

관식에게 와서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오랜만에 그 시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교과서에 실렸던 유치환의 ‘깃발’입니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는 무엇일까요.

지금은 돈이 그 푯대가 된 것 같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애달픈 마음을 공중에 다는 직장인들은

푯대 끝에 사표라는 애수를 매달고 삽니다.

사표는 그렇게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됩니다.




직장인 여러분 폭삭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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