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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지 Oct 04. 2024

빠와 까는 같다.

여행 유튜버 난리의 소회

최근 유명 여행 유튜버 이슈로 인터넷이 성화다. 유튜브 소속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일은 참으로 흔한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건의 크기를 떠나서 항상 있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옹호하는 빠들과 비판하려는 까, 중립의 입자에서 보려는 다수가 난잡해 시쳇말로 혼돈의 도가니탕이다.


나는 인플루언서들과 일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뉴스나 커뮤니티 반응은 항상 지켜보고 숙지해 두는 것이 일이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의견을 던지는 한 유튜버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요약하자면 '빠와 까는 같다'는 영상이었다.


일단 용어 정의를 먼저 하고 들어가자. 빠는 기본적으로 팬을 의미하며, 까는 그 반대인 안티팬을 의미한다. 동사적 의미로 나열하자면 빠는 아첨한다는 의미에서 '빨아 준다', 까는 비판한다는 뜻으로 '깐다'로 흔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를 전제하여 아래의 글을 읽어보도록 하자.


그가 '빠와 까는 같다'라고 주장한 배경은 이렇다. 사실 조사해 보면 그 유튜버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점은 없다. 심지어 조사해 보는 행위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래 그렇기에 유명인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반대로 싫어하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현재 악플을 다는 '까'들은 잘못의 사실 관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단순히 까는 '상태'가 된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는 반대로 그 여행 유튜버가 200만 구독자가 되는 과정에도 똑같은 이치로 '빠'들이 작용한 것이다. 명확히 알 수 있는 이유는 영상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유튜브에는 세상 다양한 영상이 있고 그 영상은 당신에게 재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중 인기 있는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맹목적으로 칭찬하고 높게 평가하는 영상들이 항상 있다. 그들은 지금 단순히 빠는 '상태'가 된 것이다.


어디에서나 극성팬이 문제라는 말이 있다. 까의 측면에서 그들은 전후 사정이나 사실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비난한다. 또한, 사건의 잘못이 사실이라도 잘못했으니 비난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쥐고 대상을 질타한다. 극성 빠의 입장에서 보아도 같다. 극성 빠들은 단순히 영상을 즐기는 데 있어 재밌으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그 영상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거나 이 유튜버가 어느 누구보다 위트있다고 맹목적으로 사랑을 준다. 다만, 사랑은 줄수록 인기라는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행복한 결말에 다다르지만, 그 반대는 끔찍하다는 결론이 등장해 명암이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왜 까는 '상태'가 파급이 더 크다고 인식될까? 사실 빠는 '상태'가 더욱 파급력이 크다. 인기를 얻어 TV 방송에 나오고 온 유튜브에 그 유튜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청룡 시리즈 신인상까지 받았다. 지나가는 할머니도 그 유튜버를 알아볼 정도니 빠는 '상태'가 만들어낸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요즘 그를 향한 비난을 보면 너무나도 매섭다. 갑자기 어디서 결집한 인터넷상의 사람들은 그를 한마음 한뜻으로 새로운 의견을 더해가며 까 내리기가 바쁘다. 여기서 앞서 이야기한 말을 정정해 본다. [왜 까는 '상태'가 파급이 더 크다고 인식될까?]보다는 [왜 까는 '상태'의 파급은 집중포화가 잘될까?]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비난하는 이유는 특정하기 쉽다. 예를 들어 웃어른에게 예의 바르지 않게 행동하는 행동같이 특정 잘못, 애매한 상황인데 누군가 잘못이라고 특정하는 넷상의 행위들, 실제 법을 어긴 행위 등이 있다. 이렇게 특정하기 쉽다 보니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내용을 비난할 수 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인간의 약한 심리는 덤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유튜버에게 재미라는 것은 구독자를 모으는 최고의 무기이다. 하지만 비난의 이유가 명확했던 것만큼 재미라는 것은 하나로 집중되지 않는다. 재미는 계량되지 않고 특정하기 쉽지 않다. 또한 유튜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유명해져서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각자 자기만의 기준이 있기에 누군가 대표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200만 구독자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모인 구독자들은 정말 이유 없이 그를 사랑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성원을 보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까는 '상태'의 반대인 빠는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특정 실수를 하면 그들은 까는 '상태'로 돌변한다.


오늘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전후 사정 가리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거나 비난한다는 점에서 '빠와 까는 같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플루언서가 있고 그것이 발현되는 형태가 참으로 다양하다. 과거 학창 시절을 빗대어보면 참으로 단순했다. 선생님이 인생의 최고 셀럽이었고 선생님의 행동에 따라 그를 몰래 비난하기도 하고 찬양하기도 해왔다. 그런 점에서 나도 학생 때는 선생님의 빠이자 까였던 것 같다.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도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비난하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가 만에 하나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빠는 '상태'는 행복한 효과를 불러오고 그 행복은 불행보단 행복을 늘려갈 것이다. 반대는 그렇지 못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기에 당신이 유명한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더불어 이 글을 어느 인플루언서가 본다면, 사실은 그들이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너무 미워하지 말아보자는 유토피아적인 말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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