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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졸리웁다.

에세이 프로젝트#1

by 단단지

나만의 독서 할당량이 있다.

기본 할당은 매월 인터뷰 잡지 읽기.

잡지는 항상 25일 쯤 아파트 우편함에서 날 맞이한다.


깨나 설레는 마음으로 은박 포장지를 벗기고 마치 어린 시절 선물 포장을 뜯어내듯 주제를 확인한다. 이번 달의 주제는 '천천히 나이 들기'. 아뿔사, 오랜만에 너무 읽기 싫은 소재다. 나는 90년생, 만 나이 34세 1만 2000일 정도를 살았다. 스스로는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그렇다고 곧이어 늙는 것도 아닌 나이. 그런 나에게 '천천히 나이 들기'란 너무 따분한 주제다.


이전 주제였던 '텍스트의 힘'이나 '디저트신드롬' 등은 주제가 참 좋았는데. 이번 달은 읽기 여간 힘든게 아니겠다. 그럼에도 자기전 조금씩 시간 내어 한 인터뷰 단위로 반쯤 읽었다. 다음 2월호가 오기 전까지는 읽어야하기에 오늘도 잡지를 편다.


나는 재밌으면 숫자를 안본다. 게임이 너무 재미있으면 시간이라는 숫자를 보지않고, 책 내용이 너무 재밌으면 숫자가 적힌 쪽수를 보지 않는다. 물론 재밌는 것들을 하면 그런 것들을 볼 짬이 안나겠지만, 이번엔 그 반대다.


오늘의 나는 빨리 쪽수(라고 쓰고 숫자라고 읽는다)를 보고 싶어서 급하게 문단의 아래까지 도달하고자 눈으로만 글을 읽는다. 그러다 다시금 각성하고 마치 머리와 눈이 나와 다른 인격체인 것처럼, 제발 글을 보며 이해 좀 하면서 읽으라고 닦달한다.


그렇게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인터뷰 한 편을 다 보고나면 다 본 만큼의 쪽수를 집어 얼마나 봤는 지 체크한다. 나는 배가 부르면 음식을 한 입 베어물곤 안에 뭐가 들었나 의미없이 바라보곤 한다. 딱 그 한심한 행색이다. 다시금 다음 인터뷰 글을 살핀다. 하지만 이번은 쉽지않다. 머리와 눈을 아무리 채찍질해도 3줄 이상을 내려가지 못한다. 졸고 있는 거다.


사실 이런 졸리운 상태가되면 내가 졸고있는건지 책을 읽고있는 건지 인지조차 못한다. 그냥 딱 한심한 상태랄까. 나는 와이프가 자면 거실에서 잔잔한 주황 라탄 조명을 켜고 책보는 걸 좋아하는 데, 지금 그 라탄 조명은 너무나도 아늑하고 눈감기 딱 좋게 만들어준다. 한겨울인데 졸리면서 참으로 세상 아늑하다. 참 졸리웁다.


결국 10분 동안 머리와 뇌는 나와 함께 샷따내리고 잠에 들었다. 이윽고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탕하고 침대로 향한다. 하필 또 침대는 내가 참 좋아하는 전기장판 2와 3의 중간 온도로 뎁혀져있다. 어서 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자다깨는데, 그러면 안좋다던데 오늘은 자다 깨려나'라는 쓸모없는 걱정을하며 나는 찰나에 잠이들어 버린다.


이번 잡지는 너무 졸리웁다. 2025년 첫 달은 잠을 참 잘 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건강에는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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