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로젝트#3
10년 만에 잘 쉬었다. 이번 9일 휴가는 나에게 정말 쉬었다는 의미를 주었다.
보통 내가 휴가를 내더라도 모든 업무들은 진행되고 있다. 특히나 실시간 응대가 중요한 우리 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매번 쉬어도 쉬는 게 아닌 날들이 많았다. 즉각 반응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인 업이다 보니 더욱더 편히 못 쉰듯했다. 실시간 응대라는 이유 말고도 원래도 일을 당장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한몫했다. 물론 직성 풀리는 성격은 일 때문에 생긴 건지 당장당장 해결하다 보니 그 도파민에 생겨버린 성향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래야 쉴 수 있기 때문에 당장 해결했던 것 같다.
업무 메신저도 마치 SNS처럼 들락날락하며 나 스스로에게 강박을 부여했던 것 같다. 반쯤은 심심해서 들어간 경우도 있다고 종종 생각하지만 정말 그랬을 리는 없겠지.
근데 이번에 푹 쉬면서 내가 무언가에 집중을 잘 못하는 이유는 스마트폰 때문이란 것도 알았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던, 게임을 하던, 글을 읽던 무엇을 하고 있던 간에 소지하고만 있으면 온갖 알람이 온다. 웬만하면 무시할 수 있지만 알람 비중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업무 메신저는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항상 당장 해결 안 하고 응대 안 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거든. 그리고 그게 두렵거든.
지난해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이 유행했다.
저자는 전자기기 없이 한 달을 섬에서 보낸 후 글을 썼다. 난 그 작가의 인터뷰 글을 우연히 보았다. 그 인터뷰를 보고 떠오른 생각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네, 그게 직업인 사람이나 가능하지'였다. 일반인에게 스마트폰은 벌이나 생활 자체에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작가가 말한 한 달 쉬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휴일은 그 느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어렴풋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절로 모두가 반강제로 쉬었기 때문이다. 광고 비수기 시즌임과 더불어 나에겐 일을 나눠 해 줄 팀원들이 생겼고, 주요 광고주인 중국 형님들도 2주나 쉬는 춘절을 위해 일을 줄인 여파다. 소위 아무도 날 안 찾았다. 모두가 멈추니 내 스마트폰에 업무 알림은 없었다.
그 누구도 날 태그하지 않았고, ‘휴가 중 죄송합니다’라며 안 죄송한 전화도 걸지 않았고, 결정해달라고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또, 내가 특히나 취약한 진동 소리도 없었다. 진동에 더 취약한 이유는 진동은 멀리서 듣게 되면 왔는지 안왔는 지 어렴풋하게 들리면서 여간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한다.
그중 대표적으로 '드드 뜨뜨'하며 편차 있는 신호를 가진 문서 결재 알람과 '드드드드'같이 일반적인 패턴의 진동이 뜻하는 업무 SNS와 카카오톡이 제일 싫었다. 그 외에도 카카오톡 대화방 붉은 1 표시나 업무 SNS에 한가득한 미확인 메시지 붉은 표시 등도 참으로 싫었다. 그 붉은 점박이들을 안 없애면 스트레스받는 성격이라 더욱 그랬다.
명절 동안은 편한 상태로 마음껏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한 생각만 했다. 그저 오늘 장모님이 주신 잡채로 밥을 먹을까?, 아니면 엄마가 준 LA갈비를 구워 먹을까. 내일은 돈도 아낄 겸 냉장고를 파먹고 가보고 싶던 부평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볼까?, 아니면 특별하게 해돋이는 아침 일찍이라 힘드니까 일몰을 보러 영종도에 갈까? 등 행복한 잡념만 가지고 살았다.
더불어 스스로 뇌 녹이는 행위라도 비판했지만, 결코 끊지 못하는 쇼츠도 아주 편하게 봤다. 왜냐하면 당장 생산성을 올려야 하는 무언가가 없고, 아직 휴일은 많이 남았고 온전히 즐기고 싶으니까. 결정적으로 이렇게 휴일을 보내버리니 일요일 어제까지도 월요일 출근에 별 부담감이 없을 정도였다. 까무러칠 만큼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기에 이제는 일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뇌가 쉰다는 게 정말 이런 건가보다. 오히려 쉬니 일하고 싶어 작게 근질했다. 일을 10년 간하며 안 하면 불안했는데 이번엔 다른 의미로 이제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깨나 내일을 사랑하긴 하나보다. 2015년부터 일하면서 일주일씩이나 쉬어본 건 신혼여행 때와 이직 결과를 기다리며 피 말렸던 3주가 전부다. 두 장기 휴식은 각각 말이 휴식이지 잔존하는 불안감 때문에 온전히 마음을 떼어버리진 못했었다.
아무튼 휴가 소진 목적으로 짧게 짧게 쉬며 느꼈던 그런 감정들보다. 이렇게 운이 좋게 모두 9일을 쉬는 휴일을 접하니 그간의 알게 모르게 기저에 깔려있던 내 취약점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스트레스에 사무쳐 살았었나 보다. 물론 내가 스트레스의 역치가 높은 것인지 스트레스를 받아도 금세 잊는 단순한 성격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무디게 살긴 했다. 스트레스받을 땐 잘 모른다고 하지 않나, 지나고 보면 스트레스였다고 인정할 뿐. 어쨌든 여러모로 지금까지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에 무탈하게 지내온 듯하다.
소위 '뇌를 쉰다'라고 말하던 그것을 내가 경험하니 휴식이란 게 별거 없다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번 주말 잘 쉬셨는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지방에 내려갈 테고 누군가는 아팠을 것이며 사정은 각각마다 다르겠지. 그런 분들은 다시금 어떻게든 휴식의 기회를 확보해 보길 바란다.
또는 온전히 잘 쉬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말을 전해보고 싶다. '정말 정신적으로 온전히 제자리에서 잘 쉬었나요?' 그게 아니라면 더불어 어떻게든 아무것도 신경을 안 쓸 수 있는 휴가를 만들어보자. 당장은 스마트폰을 억지로 안보는 게 방법이 아닐까.
아무튼 생각보다 우리는 온전히 쉴 줄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