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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지막13일

by 천우

어머님, 이제는 무엇을 하오리까.

이렇게 떠나가심을 붙잡을 수 없어 가슴만 애가 타고,

함께 지내온 세월은 그저 한스럽기만 한데

정녕 이대로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살아 계실 때는 자식들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시더니,

가시는 길마저도 이렇게 굽이굽이 곡절이 많으십니다.

잊지 못할 것이 많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아서 그러하신 것입니까.

불효자 큰절 올리며

이 모든 마음을 가슴에 묻사옵니다.


이 글은 돌아가신 어머니 24주기를 맞아,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24년 전

나와 어머니의 마지막 13일간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어머니 임종 13일 전

2002년 1월 12일 토요일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산희 엄마였다.

근래 서로 말없이 지내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나는 가게 일을 급히 접고 택시를 타 집으로 향했다.

이미 어머니는 119 구급차에 실려

집 앞 내리막길을 내려오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경련에 놀란 산희 엄마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나에게 전화를 했고,

결국 구급차를 불러

동아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

구급차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119 구급요원들과 함께 상의하다가

어머니가 지난 10년 동안 다니셨고

입원 경험도 있었던 병원으로 결정했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

혼잡한 도로를 어렵게 뚫고

간신히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구급차 안에서 담당 교수에게 전화를 했지만

토요일 오후라 집에서 쉬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응급실 당직 의사들은

간경화 환자에게 나타나는 간성혼수 상태라며

관장(灌腸)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참 인턴 의사의 미숙한 처치로

관장은 엉망이 되었고,

어머니는 똥물 위에 누워 계신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화가 나

“고참들이 하기 싫으면

신참들에게라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고함을 질렀다.

그날 나는 느꼈다.

의사들 중에도

환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병원이라는 곳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어머니는

관장과 포도당, 알부민 주사를 맞으셨고

다음 날인 13일 새벽에 의식을 회복하셨다.

그리고 나는

지금 생각해도 뼈아픈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의식을 찾으셨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셔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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