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회 +34

임종 후1

by 천우

기억이라는 일

어머니가 떠난 뒤

기억은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다.

접시 하나,

문 손잡이의 위치,

밤에 켜둔 작은 불빛 같은 것들이

기억의 문을 열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떠올리면

오히려 잘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아무 준비 없이 만나는 장면들이

더 또렷했다.

병원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작은 가방,

산소 마스크 너머로 보이던

가늘어진 입술,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던

미묘한 힘.

기억은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좋았던 순간과

미안했던 장면이

섞여 있었다.

나는 기억을

정리하려 들지 않기로 했다.

의미를 붙이는 순간

사실이 흐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있었던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기억은

정리의 대상이 아니라

견뎌야 할 시간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

기록을 남기는 이유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멈췄다.

감정을 더 써도 되는지,

혹은

지금 이 문장이

변명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기록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기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말로 하지 못한 선택들,

설명할 수 없는 망설임들,

끝내 확인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

그 모든 것을

기억 속에만 두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기록은

잘한 일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흔들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걸

쓰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은

이 글로 끝나지만,

그 시간은

내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이것이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애도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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