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후1
300회 +34 https://brunch.co.kr/@skyhlep/272
기억이라는 일
어머니가 떠난 뒤
기억은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다.
접시 하나,
문 손잡이의 위치,
밤에 켜둔 작은 불빛 같은 것들이
기억의 문을 열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떠올리면
오히려 잘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아무 준비 없이 만나는 장면들이
더 또렷했다.
병원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작은 가방,
산소 마스크 너머로 보이던
가늘어진 입술,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던
미묘한 힘.
기억은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좋았던 순간과
미안했던 장면이
섞여 있었다.
나는 기억을
정리하려 들지 않기로 했다.
의미를 붙이는 순간
사실이 흐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있었던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기억은
정리의 대상이 아니라
견뎌야 할 시간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
기록을 남기는 이유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멈췄다.
감정을 더 써도 되는지,
혹은
지금 이 문장이
변명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기록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기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말로 하지 못한 선택들,
설명할 수 없는 망설임들,
끝내 확인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
그 모든 것을
기억 속에만 두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기록은
잘한 일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흔들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걸
쓰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은
이 글로 끝나지만,
그 시간은
내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이것이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애도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