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회 +33

임종 후

by 천우

남은 사람의 하루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난 뒤에도

집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에서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이불은 개지 못했다.

어머니의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비우는 순간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드실 죽을 데우던 습관이

몸에 남아 있었다.

죽을 데울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불 앞에서야 떠올렸다.

사람들은

“이제 좀 괜찮아졌느냐”고 물었다.

괜찮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슬픔이 줄어드는 건지,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지,

아니면

어머니 이야기를 그만해도 된다는 뜻인지.

나는 여전히

결정의 순간들을 되짚었다.

그날 병원에서의 선택,

집으로 모시겠다고 말하던 순간,

의사의 눈빛,

어머니의 손.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용기를 냈을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답을 찾으려는 마음 자체가

남은 사람의 몫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남은 사람은

계속해서 묻는다.

잘한 것인지,

도망친 것은 아닌지.

그 질문과 함께

하루가 또 지나갔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삼일〉

효에 대하여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사람들은 나를

“효자”라고 불렀다.

그 말이

위로인지 평가인지

알 수 없었다.

효라는 말은

살아 계실 때보다

돌아가신 뒤에

더 자주 들려왔다.

그 말 속에는

항상 기준이 숨어 있었다.

더 잘했어야 한다는 기준,

더 오래 곁에 있었어야 했다는 기준,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는 기준.

하지만

임종 앞에서는

정답이 없었다.

모든 선택이

어딘가 부족했고,

모든 결정이

뒤늦게 흔들렸다.

나는 효를

완성하지 못했다.

다만

피하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설득할 뿐이다.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효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잘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 시간에

분명히 사람이 있었고,

결정이 있었고,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효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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