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관학교
“효”를 발견한 날
2002년,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였다.
그해부터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매월 1일이면 거리로 나섰다. “효”를 생각하자는 작은 봉사의 시민운동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을 달래기 위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작은 실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매월1일"효"생각 시민운동 봉사를 시작한지 75개월 된 어느 순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효”를 다시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느낌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산속을 헤매던 심마니가 우연히 산삼을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과 기쁨, 바로 그와 같은 감정이었다. “심봤다”라는 외침이 자연스럽게 “효봤다”라는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이 소중한 가치를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뜻을 품고 매월 1일 거리로 나설 “효”운동가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을 길러낼 공간, 곧 “효”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매월1일"효"생각 시민운동 제75회차 75개월째가 된
2008년, 결국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효”사관학교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순탄하지 않았다. 부산시청 노인복지과를 찾아가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머지않아 우리 사회도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 것이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장소만이라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심한 반응뿐이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직접 발로 뛰기로 했다.
부산 사상구 모덕에 있는 청소년회관 강당을 자비로 빌렸다. 그리고 2008년 9월 1일, 마침내 “효”사관학교 제1기 입교식이 열렸다.
8주, 64시간의 교육을 통해 103명이 수료했고, 그들은 모두 “효”운동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날의 시작은 작았지만, 시간은 그 의미를 크게 키워주었다.
2008년부터 2026년에 이르기까지 약 2,200여 명의 "효"사관학교 수료생이 25기생까지 배출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매월 1일이면 이들이 함께 거리로 나와 “효”를 이야기한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