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관학교 3기생
3기생 입교식은 2009년9월5일 다시 모덕청소년회관에서 열렸다.
이제는 더 이상 홍보가 필요 없었다. 입교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본 100명을 넘는 교육생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모습은, “효”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효”사관학교의 교육은 결코 형식에 머물지 않았다.
8주 동안 64시간의 기본과정을 통해 삶의 중심에 “효”를 세우고, 이어지는 32시간의 심화과정으로 그 가치를 삶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총 96시간의 여정을 마친 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매월 1일 “효”생각 시민운동에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 현장으로 들어가 “효”선생님이 될 것인가.
혹은 그 두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인가.
이 교육의 대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효”의 가치를 사회에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부산의 고령자들이었다.
교육의 내용 역시 삶과 맞닿아 있었다.
노년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건강과 행복을 다시 정의하며, “효”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는 삶.
그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효”교육을 담당하는 새로운 역할이 만들어졌고, 수료생들은 단순한 노년을 넘어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을 접하게 되었고, 맞벌이 가정에서 채워지지 못한 부분을 “효”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메워주었다.
3기생 가운데 K “효”운동가님 또한 잊을 수 없는 분이다.
그분은 늘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따뜻한 모습으로, 자신의 사비를 들여 보충 교재를 제작하는 등 묵묵히 헌신하셨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고령으로 인해 장기요양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결국 “효”운동가로서의 길을 내려놓게 되었다.
하지만 그분이 남긴 마음과 손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조용한 헌신은 지금도 “효”사관학교의 곳곳에 남아, 또 다른 누군가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 길이 생긴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부른다.
“효”사관학교의 역사는 그렇게, 사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