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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관학교 5기생도

by 천우

이어 5기생은 홀수 기수로 다시 모덕청소년회관 강의장에서 2010년 9월 6일 입교식을 가졌다.

이때부터 “효”사관학교는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5기생 회장의 역할이 있었다.


여성인 N “효”운동가님은 강한 카리스마와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분이었다. 5기생을 이끄는 데 있어 남다른 통솔력을 발휘하며 “효”사관학교의 활성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침 5기생 교육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국제신문 대강당에서 약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국제 “효”문화 심포지엄을 성황리에 개최할 수 있었다.


2010년 11월 18일, 해외 석학까지 초청해 열린 이 행사는 전국 최초의 “효” 학술 심포지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우리가 지향해 온 범국민 “효행” 장려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그때 5기생이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N “효”운동가님이 회장이 아니었다면, 그 큰 행사는 시작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참가자 500여 명의 접수와 안내, 좌석 배치까지 모든 과정을 맡아 헌신적으로 준비해 준 5기생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5기생들이 “효”본부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고 있다는 사실은 큰 감사이자 자랑이다.


세월이 흘러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5기생들은 “효”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매월 1일 “효”생각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에는 94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함께하는 분도 계신다.


그리고 5기생 중에는 N “효”운동가님 뒤를 이은 회장으로서 B"효"운동가님께서 바톤을 이어 받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효본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시는 분이 아직 계신다.


특히 5기생 중에 가장 대단하신 분은 C효운동가님을 빼놓을 수가 없다. C효운동가님께서는 눈이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력 장애를 가진 분이시지만 "효행"장려 운동을 위하여 솔선수범 모범을 보여주신 덕분에 수많은 효운동가님들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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