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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관학교 10기생

by 천우

“효”사관학교 10기생은 2013년 4월 3일, 서면 영광도서 4층 사랑방에서 약 120여 명의 생도들이 함께한 가운데 입교식을 가졌다.

처음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0기.

숫자는 단순히 하나 늘어난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나아가는 대한민국.

그 절박함을 안고 부산시청 노인복지과를 찾아가 수차례 설명하고 설득했던 날들이 있었다.

이 운동이 왜 필요한지, 앞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묵묵부답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그 순간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지금 하지 않으면 늦어질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자비를 들여 청소년회관을 대관했고, 그렇게 하나씩 버텨 나가던 중, 서면 영광도서 사장님의 따뜻한 손길이 더해졌다.

“좋은 일입니다. 함께해야지요.”

그 한마디와 함께 짝수 기수는 무료로 교육 장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청의 협조로 구포도서관까지 연결되면서,

홀수와 짝수 기수 모두 안정적인 교육 공간을 갖추게 되었다.


그날, 비로소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제… 할 수 있겠다.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장소, 교육생, 그리고 교수.

그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순간,

“효”운동은 더 이상 작은 씨앗이 아니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세대를 잇는 큰 나무로 자라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10기생 가운데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들이 계신다.

한 분은 목회자였고, 또 한 분은 기업의 중견 간부로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오다 퇴직 후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오신 분이었다.


목회자이신 분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종교적 사명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과거 7기에서 만났던 한 스님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목회자로 선한 뜻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효운동보다는 종교적 사명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 7기에서 만났던 한 스님의 모습이나 같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기에, 그분들에게는 또 다른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

그 무게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 속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그 울타리는 때로는 위로가 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벽을 넘기 위해 또 다른 공동체를 찾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나 그 모든 흐름 속에서도,

오직 “효” 하나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간 한 분이 계셨다.

기업의 중견 간부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뒤,

“이제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효”사관학교의 문을 두드린 분이었다.

그분은 10기 임관 이후,

무려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후세대를 위한 “효”교육에 앞장섰고,

전국 “효도가족 100쌍 찾기” 운동,

매월 1일 “효”생각 시민운동,

국회의사당 효행장려·출산장려 포럼,

서울 광화문 범국민 효행장려 운동까지—

그 어느 자리든,

그분은 늘 같은 모습으로 서 계셨다.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그 긴 시간 동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 발걸음은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남았다.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셔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지만,

그분이 남긴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분의 발걸음은 길이 되었고,

그 길은 지금도 누군가가 따라 걷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진짜 “효”는

말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이라는 것을.

“효”사관학교 10기.

그것은 단순한 기수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누군가는 끝까지 지켜낸 약속의 기록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효’라는 가치를 지켜낸 그분의 발걸음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다.

더 이상 함께 활동할 수 없지만, 그분이 걸어온 길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헌신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효”운동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효”사관학교 10기생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헌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또 하나의 소중한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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