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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관학교 14기생도

by 천우

짝수 기수에게는 늘 다행스러운 일이 있었다. 바로 서면 영광도서 4층 문화사랑방이라는 따뜻한 공간에서 “효”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15년 4월 2일, 그 익숙하고도 감사한 장소에서 효사관학교 14기생들의 입교식이 다시금 열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시작은 영광도서 사장님의 배려에서 비롯되었다. 효교육의 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공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은혜는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저 고맙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뿐이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는다. 본래 이러한 고령자 효교육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지원해야 할 일이다. 부산시나 정부가 장소를 제공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민간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효사관학교는 이러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원이 있든 없든,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며 효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14기생들 역시 그러한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들이었다. 교육이 시작되기 전, 모두가 함께 마음속으로 ‘효사관학교 십계명’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다짐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겠다.

나는 후세대에 보탬이 되겠다.

나는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

나는 효문화 확산에 앞장서겠다.

나는 품위를 잃지 않겠다.

나는 멋진 사람이 되겠다.

나는 새로운 꿈과 야망을 품겠다.

나는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겠다.

나는 가정과 가족을 지키겠다.

나는 부모와 자식을 보호하겠다.


이 열 가지 다짐은 교육의 시작이자, 삶을 다시 세우는 출발선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14기생들의 눈빛과 태도에는 이전 기수들과는 또 다른 뜨거운 열의가 담겨 있었다.


특히 14기 회장으로 선출되신 분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분이었다. 포항이 고향인 그는, 100세에 가까운 연로하신 어머님을 정성껏 모시고 사는 집안의 장남이었다. 전국 효도가족 100쌍을 찾는 과정에서 직접 포항을 방문해 어머님을 뵈었을 때, 그 건강하고 평온한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말이 아닌 삶으로 효를 실천하는 분이 회장을 맡아주신 것은 14기생들에게 큰 축복이었다. 그분은 이후에도 꾸준히 효행장려 활동에 참여하며 전체 회장단을 이끄는 연합회장 역할까지 맡아주었고, 그 헌신 덕분에 효운동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14기생들은 교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해군사관학교 견학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효사관생도로서의 자부심을 키워나갔다. 또한 10개 조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맡았다. 효를 실천하고, 효를 생각하고, 효를 알리고, 효정책을 고민하고, 효를 교육하고, 효를 조직하고, 효문화를 만들고, 효운동으로 확산시키고, 효를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며, "효"생활 속에서 "효"를 실천하는 구조였다.


각 조는 거주지가 비슷한 10여 명이 한 팀이 되어 활동했다. 이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 삶 속에서 효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실천하며, 효의 가치를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시간이었다.


그 결과 14기생은 효사관학교 역사 속에서도 특별히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기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14기생들은 ‘배우는 사람’에서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효사관학교 역사 속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기수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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