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관학교 16기생
2016년 4월 3일, 서면 영광도서 4층 문화사랑방에서 입교한 효사관학교 16기생 역시 15기생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년간 교육 장소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던 서면 영광도서가 건물 증축 공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공사 기간 동안에는 더 이상 이곳에서 효사관학교 교육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영광도서 사장님의 깊은 배려 덕분에 짝수 기수가 시작된 2기부터 이번 16기까지, 총 8개 기수가 이곳에서 꾸준히 효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영광도서에서 짝수 기수의 교육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홀수 기수였던 15기를 마지막으로 구포도서관 역시 사용이 중단되었고, 짝수 기수인 16기마저 영광도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효사관학교는 심각한 장소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처음 2008년, 모덕청소년회관을 자비로 대여해 1기를 시작하던 그 순간부터 효사관학교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초고령화 사회 속에서 늘어나는 어르신들께 효교육을 전하고,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 이어가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그 길은 희망만큼이나 수많은 고비와 시련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었다.
교육 장소 문제도 큰 어려움이었지만, 그보다 더 가슴 아팠던 것은 ‘효’를 배우겠다고 들어와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일부 사람들의 존재였다.
특히 울산에서 올라와 7기로 임관한 한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이른바 ‘양두구육’과 같은 모습으로 효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어렵게 부탁하여 부산까지 와서 교육을 받도록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효사관학교의 창립자인 것처럼 거짓된 주장을 하며 본질을 왜곡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이러한 일을 겪으며 ‘과연 효교육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회의감마저 들기도 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살아가자는 이 교육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왜곡되어 이용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입교한 16기생들에게 다시 희망을 걸었다. 효사관학교에 입교한 16기생들에게 ‘효’의 참된 의미를 바로 세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교육에 임했다.
16기생은 회장, 수석부회장, 부회장, 감사, 총무를 중심으로 8개 조—실천조, 생각조, 홍보조, 정책조, 교육조, 조직조, 문화조, 운동조—를 구성하고 각 조에 팀장을 임명하여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효사관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3사관학교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효’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16기생들은 임관 이후에도 적극적인 실천을 이어갔다. 회장과 회원들은 매월 1일 ‘효 생각 시민운동’에 필요한 물품과 보관용 보자기를 제작하여, 16기 마크를 새겨 효본부에 기증하는 뜻깊은 정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여성 부회장 한 분은 젊은 시절 매우 부유한 삶을 살았던 멋쟁이였지만, 노후에는 다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품격 있는 모습을 잃지 않고 효운동에 참여하여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또한 생각조 팀장과 정책조 팀장 역시 임관 이후 꾸준히 16기를 위해 헌신하며 효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이어갔다. 특히 정책조 팀장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월 1일 ‘효 생각의 날’마다 빠짐없이 참여하여, 직접 음향기기를 준비하고 색소폰 연주로 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한편, 효운동조의 한 조원은 경주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16기 교육을 받은 뒤, 울산에서도 효교육을 이어갔던 경험을 전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부산 7기 출신이 울산에서 효사관학교를 운영하며 자신이 전국 최초 설립자인 것처럼 거짓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만약 16기생이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 왜곡된 현실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런 의미에서 16기는 단순한 교육 기수를 넘어, 진실을 바로잡아 준 고마운 기수로 기억된다.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효사관학교는 사람을 통해 다시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결국 진심으로 ‘효’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음을 16기생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