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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관학교 18기생

by 천우

"효"사관학교 18기생

2017년 4월 2일, 부산진구 양정 로터리에 위치한 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18기생 입교식을 거행하던 날,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쓸쓸해지며 새로운 감회가 밀려왔다.


국가와 우리 사회, 그리고 국민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를 만들어 2002년부터 2017년 18기 입교식을 한 지금 15년 동안 시민운동과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느 시민운동단체는 시청의 지원을 받아 시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훌륭한 건물 한 층 전체를 사용하면서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효교육을 위한 장소를 대관해 줄 정도였다.


반면 우리는 저출산·고령사회 속에서 후세대의 바른 인성을 세우고자, 고령자 교육을 위한 효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무료로 "효"교육을 실시하며 시민운동 봉사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육 장소 조차 마련하지 못해 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들이 우리보다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민운동지원센타도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명목으로 시에서 지원하여 운영되는 센터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되는 활동은 미미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구조 속에서, 진정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단체들이 오히려 외면받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관과 연결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


그 속에서 문득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 가사가 떠올랐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그 물음이 가슴 깊이 울려 퍼지던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기생 입교식은 의미 있게 진행되었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되신 18기 회장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비록 남의 교육장에서 "효"교육을 받았지만, 그분의 "효"정신만큼은 누구보다도 깊고 투철했다.

수십 년 동안 병환 중인 장모님을 집에서 모시며 몸소 ‘효’가 무엇인지를 실천하신 분이었다.


효사관학교에 입교하신 후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효운동에 참여하셨고, 매월 1일 ‘효’ 생각 시민운동 때마다 시가지 가두행진의 맨 선두에 서서 ‘효’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셨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혈액암 진단을 받으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토록 헌신적이고 뜨거운 열정으로 효행장려 시민운동에 매진하셨던 분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돌이켜보면 이번 18기생이 입교하기까지 지난 15년 동안 효운동을 함께하시던 많은 분들이 연세와 병환으로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분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신 숭고한 뜻과 실천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뜻을 이어받아 효사관학교는 앞으로 더욱 발전된 시민사회단체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이웃과 고령자,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더 깊이 있는 봉사와 실천을 이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다.


18기생은 유난히도 특별한 기수였다. 늘 선두에서 "효"깃발을 들고 시민들에게 효를 외치던 회장님은 떠나셨지만, 다행히 그 뜻을 이어 또 다른 18기생이 가두행진의 맨 앞에 서서 효깃발을 들었다.


그렇게 효의 정신은 한 사람에서 또 다른 사람으로 이어지며, 조용하지만 힘 있게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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