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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un 14. 2016

불안은 타인이라는 거울에 보여진 나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알랭 드 보통 <불안>에서 찾은 불안의 원천과 해결방법

알랭 드 보통, <불안>

불안(不安)의 사전적 뜻은 몸이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불안을 느낄까?

우리가 겪는 이 불안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스탕달은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라는 자아는 절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비범한 사람들은 오롯이 혼자만의 성찰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들이 규정해 주는 나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까 봐 불안을 느낀다.

나의 모습,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게 보이는 나의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그것이 돈, 명예, 성공, 미모, 사랑 그 무엇이 되는지 상관없다.-에 의해서 불안을 느끼게 된다.



❖  불안의 원인


1. 사랑의 결핍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p.22

우리가 어린아이일 때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없이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상황이 다르다. 첫 번째는 성적인 사랑이다. 이성으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는 관심과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나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세상으로부터 확인받는 관심과 사랑이다. 쉽게 말해서 능력, 성공, 명예 등이다. 이러한 사랑들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연인이나 직장은 우리에게 지위를 부여한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이다. 그런데 그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여기서는 지위와 같은 의미이다.- 확인시켜 주지 않을 때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 무관심과 무시는 나의 존재를 잃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통해서 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2. 속물근성

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대학 시험에서 귀족 자제와 작위가 없는 사람들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그 뜻이 달라져서,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이나 물건을 판단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지나치게 떠벌리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그러니 속물근성이라는 것은 절대 좋은 의미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속물근성이라는 게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큰 자동차를 타고, 비싼 가방을 메는 것은 그것만으로 상대방에게 나의 지위를 확인시켜 주고 싶은 것이고, 우리 역시 아닌 척하겠지만, 상대방의 자동차와 가방 등으로 그 사람의 지위를 확인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바로 우리 근저 깔려 있는 속물근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3. 기대

우스개 소리 같지만, 중년의 남자는 아내를 동창회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아내가 동창회를 다녀와서, 자신과 비슷했거나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했던 친구의 결혼 생활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 남편에게 심드렁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와 같다고 느끼는 조건의 사람들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한다. 그 비교로 통해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p. 57


그런데 과거 신분사회에서는 높은 지위를 부러워하거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지위와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살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평등이 보편타당한 사회적 이념이 되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의 삶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풍족해지고 나아졌으나, 우리 또한 이전에는 넘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통해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즉, 구석인 보다 지금의 하급 노동자의 삶이 훨씬 더 풍족함에도 삶의 만족도는 기대로 인해 확연히 더 낮을 것이다.


4. 능력주의

19세기 니체의 "신의 죽음"과 다윈의 등장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능력의 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의 시대에서 가난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자는 부도덕-악하다는 뜻은 아니다.-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구약성경, 마태복음 19장 24절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할 만큼 부자의 사회적 지위가 물질적 지위만큼 높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의 시대를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가난은 무능력, 게으름을 뜻하는 것이 되었고, 부와 성공은 근면과 성실 심지어 인품마저 의미하게 된 것이다.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p.106
부자가 빈자보다 풍족하게 사는 건 맞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부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런 것을 아마도 현대사회의 천민자본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5. 불확실성

전통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지만, 그 지위를 잃는 것 또한 어려워 행복할 지경이었다. p.117


불안은 현대 사회에서 야망의 하녀이다. 남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 사회에서 처럼 성실하다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빛을 발할지 모르는 재능, 누구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행운과 불운, 전통사회에서 자급자족하던 것과는 달리 고용주의 이익과 관계, 세계 경제 상황과 같이 불확실한 요소에 의해서 내일이라도 지금의 지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돈을 잃고, 직장을 잃는 것은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실로 인해 파생되는 사랑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앞서 말했던 사랑 중에서 두 번째 사랑으로, 세상으로부터 받는 관심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 따라서 대접이 달라지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타인의 인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해법

장엄한 자연 앞에서 우리 모두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1. 철학

17세기 스페인에서는 5,000명이 명예 결투로 목숨을 잃었다. 르네상스 시대쯤부터 시작된 명예 결투는 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지속되었고, 그 결투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그들의 결투는 타인이 자신의 명예를 더럽혀졌을 경우에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다양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도 있었으나, 자신의 집이 더럽다거나 자신과 의견이 다소 다르다는 이유로 싸웠다.

그런데 이 명예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이 타인에게 결정될 만큼 사소한 것인가.

우리가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은 타인의 시선에게 벗어나는 것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냐 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남들은 우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남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지 않는가!

알랭 드 보통은 그것을 지적인 염세주의라고 표현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세상을 왕따 시킬 수 있는 용기와 외로움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혜민 스님-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유를 갖고 자기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2. 예술

예술이 불안을 해소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아널드는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고 했다. 예술이 삶의 비평이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삶에는 비평이 필요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 아름답고 추한 것, 소중하고 천한 것,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당장 우리의 모습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의 삶 또한 액면 그대로 드러는 것이 아니라, 숨겨지고 감추어져 있다. 그러니 예술을 통해서 삶의 중요한 것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박한 그림을 통해 삶에서 우리가 가지는 속물근성을 교정할 수 있고,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를 음악이나 그림 또는 소설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물론 여행을 통해서 장엄한 자연을 경험하고 그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 더 확실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 충분히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토머스 존스, <나폴리의 건물들> 1782

3. 정치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은 어떤 사람일까,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이 첫 번째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아마도 돈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현대 사회의 돈에는 도덕적 가치까지 부여되어있다. 그야말로 세속화 시대이다. 그런데 현대의 선망이 되는 지위가 예전에도 동일했을까?

그렇지 않다.

높은 지위라는 게 스파르타 시대에는 힘만 강한 자, 중세 유럽에는 성인에서 기사로 바뀌었으며, 18세기의 영국은 기사 보다는 신사였다. 결국 지금 높은 지위라는 것 또한 충분히 가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더구나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우리에게 돈이 있는 자가 강한 자이며, 도덕적이며, 선망을 받아야 하는 자라고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주입되어 있는 물질주의, 기업가 정신, 능력주의에 대한 열만은 체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다수는 이 체제의 의해 생계를 유지한다. p. 266


그러니깐 현대 사회의 지배계층이 주입시키는 가치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속지 않고, 사회의 가치와 이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정치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4. 기독교

과학의 시대에서 기독교는 예전만큼 큰 영향력이 가지지 못한다. 물리주의자들은 육체를 하나의 위대한 기계로 본다. 그래서 죽음은 이후의 사후세계는 없다고 한다. 마치 전기 불이 꺼지면 끝이 나듯이, 우리 인간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죽음은 우리에게 불안을 해소하는 큰 역할을 한다. 죽음 그 자체가 삶을 박탈하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상당히 아이러니 하지만 어떻게 죽음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가?


죽음은 지위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던 관심의 덧없음, 나아가 무가치함을 드러낸다. p. 275


그리고 종교를 가진다는 것, 특히 기독교를 가진다는 것은 현재 내가 누리지 못하는 지위를 역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방법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빈자로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천국을 소망하여 신이 주는 사랑과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불안을 충분히 해소하게 해준다.


5. 보헤미아- 보헤미안들의 사회 또는 집단

보헤미안은 집시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보헤미안들은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시인과 법률가 구분 없이 사회 어느 계층과 집단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19세기 초에 탄생한 경제적이고 능력주의적인 지위 체계에 맞서는 입장이었다. 그러니깐 부르주아들이 중요시 여기는 돈과 지위보다는 예술적 가치 등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월든>의 작가, 핸리 데이비드 소로는 돈 없이도 얼마든지 가치롭게 살 수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살면서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질수록 행복 진다."고 했다.

그러나 돈과 같은 물질을 경박하다고 생각한 보헤미안들은 20세기에 들어사면서 더 극단적으로 바뀌어간다. 그리하여 실제적인 문제-돈-를 해결하지 못해, 궁핍하였고 더 심각하게는 먹을 것이 없어 생각할 힘마저 잃게 되었다.

그러나 보헤미안은 주류계층이 인정하는 사회의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 또한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월든 호숫가의 가을 풍경, 당시 소로는 28불로 지은 오두막에서 대중보다 개인의 중요성과 행복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스탕달의 말처럼, 우리는 주변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남의 인정을 통해서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내지는 지위를 위협받고, 더 심각하게는 지위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해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지위라는 것을 반드시 대중에 의해서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내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지위를 인정하는 대상은 아주 다양하며,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지배계급이 정해놓은 가치를 불특정 다수에게 인정받고자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 있다. 그 인생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러니깐 인생의 길에 대한 가치 평가는 다양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대상 또한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앎과 행함은 다르다. 알아도 안 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앎은 행함의 출발이 될 것이다. 내가 느끼는 불안의 원천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첫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네이버 영화,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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