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말과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휘발성과 불멸성이다. 말은 그 어디에도 그 존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글은 어떠한가. 뱀이 똬리를 틀고 그 자리에서 먹이를 노려보듯 무섭게도 절멸하지 않고 영속한다.
나는 그 말을 수없이 배설하며 살아왔다.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해왔는가. 그 무시무시한 저주와 비난을.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부제를 나름 지어보려고 했지만 번역가의 "예감하지 못하는 모든 평범한 이들을 위한 서글픈 면죄부" 그 이상의 것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 그만큼 이 소설은 나의 배설에 대한 작게 나마 면죄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빠질 머리가 얼마 남지 않는 토미와 그의 첫사랑인 베로니카는 한 장의 편지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된다.
40년 전 대학시절, 토미는 베로니카와 연애를 했고 실연을 한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토미의 친구, 에이드리안과 연애를 하게 된다. 토미는 그 둘의 만남에 적당한 무관심과 위선의 조언을 남긴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고 실패하고 여행을 떠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고 누구나 그렇듯 삶을 살아왔다.
어느 날 토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 토미는 베로니카의 엄마가 자신에게 유산을 남겼고 그의 친구였던 에이드리안의 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남겨진 일기를 찾기 위해 토미는 베로니카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게 된다.
우리는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특히 친구나 연인이었다면 그 바람은 더욱더 절실할 것이다. 기억은 그 바람들로 인해서 쉽게 조작된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각자의 기억이 다른 것은 그 기억이 감정에 기반하여 저장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토미는 지난날의 기억을 이혼한 적적함에 다시금 조작하게 된다. 그 기억은 베로니카와의 만남에 무언가의 희망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고 토미와의 만남을 저주한다. 40년 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기억의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살아오며 휘발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말들을 해왔다. 비록 절멸하지 않는 글은 아니었지만 그 언어들이 가지는 예언성을 무시해왔다. 소설의 반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나의 그릇된 말들은 틀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