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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an 24. 2021

아이네이스

아이네아스가 걸어갈 길이 기다려지듯 내 앞에 펼쳐질 길을 설레며 기다리고

아이네이스 1, 2 장을 읽고. 

  교회를 다니며 가끔 고심하는 낱말이 있다. 십자가.

  사람에게는 각자 짊어지고 가야 할 나름의 짐이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카르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십자가이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까지 짊어지고 간 것,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것은 우리를 혼돈으로 몰아갈 수 있지만 삶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기에 욕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인내해야 할 고난들이 두려울 뿐이다. 예수를 팔아먹어야 했던 유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해야 했던 베드로. 예수의 부활을 위해 그들의 삶은 그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니었을까. 우리 각자 삶에는 그런 십자가가 아마 여러 개 보다 많이 있어 보인다. 있어야만 할 거 같다. 


  아이네아스를 읽으며 문득 십자가가 떠올랐다. 파리스는 트로이를 산화시키면서까지 헬레네를 사랑했어야 할까? 그가 헬레네를 사랑하고 트로이가 산화되어야만 아이네아스는 카르타고로 몸을 숨길 것이며 그런 그를 모친인 베누스는 안타까워하며 도울 것이다. 그런 역경과 고난이 로마의 건국에는 반드시 필요했던 게 아닐까? 삶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반드시 있다. 그걸 이행해야만 다음 단계가 온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건 그때 가보아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동안이 우리에게 고난이고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르다면 필시 잘 도착할 것이라고 믿는다.


"두려워 말라, 퀴테레아여. 네 백성의 운명은 변함이 없다. 너는 약속된 라비니움 시의 성벽을 보게 될 것이며, 고매한 아이네아스를 하늘의 별들에게로 올리게 될 것이다. 내 생각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아이네아스 32쪽


  삶의 길은 반드시 하나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결정론에 따른 인과론적 삶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운명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 의지로 내가 선택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아이네아스가 걸어가야 할 길이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 그가 걸었던 길에서 짊어진 십자가가 나에게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절절히 아파하고 눈물을 견디며 살아가는 건 필시 다음의 무언가를 위한 거라고 믿는다. 아이네아스가 걸어갈 길이 앞으로 기다려지듯이 내 앞에 펼쳐질 길을 설레며 기다리고 싶다. 다만 덜 아프고 덜 아파하게 하고 싶다. 당신이 아파한다면 내 십자가를 내려놓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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