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멋있게 보이려고 검은 색 옷을 입었는 건데
<일기와 수필사이>
3년간의 스트레스 때문일까?
얼굴에 주름도 많이 생기고 머리까지 많이 빠졌다.
장롱에서 좋아하던 옷을 꺼내서 입어보고 머리를 왁스로 만져도 몇 년 전에 거울에서 보던 내 얼굴이 아니었다. 자존감은 빠지는 머리 만큼 하루하루 잃어갔다.
그러다 우연히 입은 검은 티셔츠 한 장에 마음을 빼앗기도 말았다. 뭔가 새롭게 보였다.
옷장에서 검은 색 바지를 꺼내서 입어 보니 검은 티셔츠, 검은 불 테 안경과 함께 색다른 사람이 거울 속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이왕 입은 김에 신발장에서 검은색의 단화를 꺼내서 신어보았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몇 년 전에 보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그래서 검은 색을 사서 입기 시작했다.
이번 가을에도 검은 색 티셔츠를 3장이나 샀었다.
그런데 오늘 선배가 나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스티브 잡스가?"
"네?"
"검은색 바지, 검은색 안경, 검은색 티셔츠. 너 홀아비인지 다 알고 있는데 굳이 그렇게 티를 내고 다닐 필요 있나?"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선생님 스티브 잡스 같아요.' 그때 그 말이 듣기 좋았다. 그런데 그 말이 그냥 꾸미지 않는 그런 모습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아이들에겐 그렇까지는 아니겠지만, 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여자 후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내 옷 입은 거 이상해?"
"선생님, 이상하지는 않은데 제 남편이라면 이렇게 입히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유니클로 브랜드는 뭐랄까, 그냥 그래요. 남방 같은 거 입으시는 거 어때요?"
당연히 후배는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겉으론 웃었지만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좀 멋있게 보이려고 검은 색을 입은 건데 남들에겐 내 상황이 투영되어서 보였다니 서글펐다.
쇼핑을 좀 할까? 아님 그래도 검은색 옷을 고집할까? 고민을 해본다. 남을 위해선 살고 싶지 않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