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Dec 19. 2015

손수건

가방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보며 어디에 사용할지 상상해 본다.

  <일기와 수필 사이>


  조선대 교수이자 시인인 나희덕의 산책에 "세 여인의 손수건"이라는 글이 있다.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님께 내밀었던 베로니카의 손수건,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흑인 장군 오셀로 하여금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게 만든 손수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 헤르타 뮐러에게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손수건이다. 나에게 손수건은 어떤 의미일까?


  몇 해 전에 하얀 손수건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다닌 적이 있다.

  "면" 소재가 아니라 약간 까칠한 것이 "마" 소재가 조금 들어간 면마 혼방 손수건일 거다. 그런데 면마 혼방이라고 하니 꽤 아저씨 물건 같이 느껴진다. 영어 표현을 빌려서 코튼 린넨(Cotton Linen)이라고 하면 꽤 젊은 사람 물건 같으니, 언어가 주는 그 느낌의 차이인지 아니면 문화사대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조금 더 세련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나의 손수건이 면마 혼방이지만 아저씨 물건과는 사뭇 다르니, 설명을 잠깐 하려고 한다. 흰색 바탕에의 가장자리엔  파란색 물결무늬 수가 놓여 있고, 한쪽 모서리에는 파란색과 보라색의 리본이 엉성하게 수 놓여 있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누구의 물건이냐 여쭤봤는데 모른다고 하시니 아내가 쓰던 것 같기는 하나, 아내가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그 주인의 행방이 묘연하다. 주인은 모르나 내 서랍장에 들어있으니 자연스레 내가 사용한다. 하고 많은 손수건 중에서 왜 그걸 들고 다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집을 나서는데 서랍에서 급히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 전날, 손수건이 없어 상당히 난처했기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러하다.

  신학기가 되기 전, 우리 교사들은 다 같이 모여 각자의 학년과 담당 업무 배정을  통보받게 된다. 그 전에 미리 자신이 희망하는 학년(몇 학년 담임교사 또는 교과전담교사)과 업무를 신청하게 된다. 그 신청을 바탕으로 인사 자문위원회에서 교사들의 학년 및 업무를 배정하게 된다.

  나 역시 학년업무신청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전에 인사 자문위원회장인 교감선생님께서 잠깐 보자고 날 부르셨다. 내가 사정을 아시곤, 학교에서 나를 많이 걱정하고 있으며 어떻게든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난 그저 드릴 말씀이 없다고 개인적인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잘 부탁드린다거나 어떻게 해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나란 사람이 생겨먹은 게 우직한 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선배의 전화가 왔다. 선배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다소 급하게 나에게 말했다. 학교 측에서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써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가만히 있지 말고 교감선생님께 전화라도 드려 나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부탁을 하라는 것이었다. 선배의 권유에 난, 그저 괜찮다고 내 가정사로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면 누군가는 내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깐 사양한다고 했었다. 물론 옆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던 아내 역시 그리 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어찌 된 일인지, 선배의 전화 내용과는 결과가 전혀 달랐다. 난 수업시수가 적은 교과전담교사를 맡았고 게다가 업무를 전혀 받지 않았다. 쉽게 설명하면 그냥 수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주변은 동료 교사들은 전혀 웅성거리지 않았다. 다들 내 사정을 알아서 그런 건지, 대놓고 말하지 못한 건지는 몰라도 아마 전자가 맞을 것이다. 아무도 나의 업무 배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으니, 내가 제일 불안하고 답답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수없이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선생님에 대한 업무 편성에 이견이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난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신세가 처량해서 울었는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배려에 고마워 그랬는지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난 요즘 말로 상남자는 절대 아니었지만, 꼴에 남자라 눈물을 흘린 적이 거의 없었다. 군대에서 부모님 첫 편지 받고, 내 딸아이 탯줄 자를 때, 그리고 몇 번 없다. 그런데 아내가 아프면서는 수시로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래도 남자니깐 왠지 누구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해 나름의 요령이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면 화장실에 뛰어 가서 숨죽여 울거나, 작정하고 체육관 창고에 가서 미리 실컷 울면 되었다. 그런데 그땐 회의 시간이었고, 엉덩이를 뜰 수 없는 중간 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나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눈물을 참으면 되는 게 이상하게 그게 안 되었다. 한번 터진 수도꼭지는 내 뜻과는 달리 절대 잠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눈물은 계속 흘러나왔고 난 눈물 대신 소리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날 나는 서랍장에서 급히 하얀 손수건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출근을 했던 것이다.


  물론 손수건을 사용한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그 전에도 가끔 들고 다녔는데, 그 사용방법이 달랐다. 같은 물건이라도 사람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그 물건의 용도가 다르니 말이다. 그러니깐 손수건 역시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했었다.  


  어린 시절 손수건은 나를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물건이었다. 외할아버지 생신이 되면 당시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버터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버터케이크를 그냥 먹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생신에 절대 빈손으로 가는 건 아니라고 하시며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가진 용돈으로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버터케이크를 당당하게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을 살까 고민을 했다. 책을 사려고 하니 조부모님께서 책을 읽으시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런 건 어른이 아이에게 주는 거라는 느낌이 강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트로트 카세트테이프였는데 어린 시절 외할머니 곁에서 컸지만, 그 뽕짝 리듬이 어찌나 싫었는지 도저히 그걸 선물로 드리고 싶지 않았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고른 것이 손수건이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아주 멋쟁이셨다. 한번 외출을 하시게 되면 외할머니, 어머니,  이모보다 더 늦게 나오셨다. 때로는 나오시다가 다시 들어가서 옷을 바꿔 입으시고 했었다. 옷장을 열어보면 재킷과 바지가 종류별, 색깔별로 정리되어있었고, 항상 셔츠의 깃은 풀을 먹여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셨다. 그리고 대구 서문시장에 가셔서 항상 제일 좋은 맞춤정장을 빼입으셨다. 그리고 방 벽면엔 외출하실 때 쓰시는 중절모가 걸려있었는데, 밖을 나서실 때는 그 중절모를 쓰시고 마지막에 챙기시는 물건이 있으셨다. 그게 바로 손수건이었다.

  내가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릴 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난 외조부모님과 자주 있었고, 더군다나 나중에는 내가 살던 집 옆으로 이사를 오셨다. 그리고 두 분은 나를 데리고 63 빌딩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구경시켜주셨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외할아버지의 외출 준비를 눈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 멋쟁이 외할아버지가 마지막에 챙기는 물건이니, 생신 선물로 그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손수건은 내가 어른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의 선물이었다.


  손수건을 선물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은 머리카락을 박박 밀고 나서였다. 중학교 입학 후, 교복을 입기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교복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어주셨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고 가끔 그러셨다. 그런데 이 손수건이라는 게 얼마나 웃긴 물건이냐면 넣 고다니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그러나 불편해서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꼭 필요한 일이 생긴다. 체육 시간에 땀을 많이 흘리거나 세수를 하게 되어, 얼굴을 닦고 싶을 때 말이다. 이때는 꼭 주머니에 없는 물건이 바로 손수건이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다행히 손수건을 가지고 있어서 사용하고  그다음에 뒷주머니 넣고 있으면, 어느 순간 촉촉한 손수건 때문에 속옷이 젖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라고 하기엔 필요하고 필요하다고 하기엔 불편함을 주는 아주 요상한 물건이었다. 그때는 손수건을 사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사용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하튼 교무회의 시간에 눈물을 한바탕 흘리고 난 뒤부터, 난 손수건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다녔다. 곱게 접어서 넣기엔 당시 내 상황이 그리 달달하지 못했다. 그저 흐르는 눈물을 닦을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뒤, 날 위해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하얀 손수건을 우연히 한 여자에게 건넸다. 초겨울 손을 씻고 나온 그녀가 손을 시려워 하기에 그냥 빌려주었다. 내가 눈물을 닦을 때와는 그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가벼웠다. 그리고 '손수건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는 그렇게 사용하고 싶었다.


  영화 <인턴>에서 남자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항상 손수건을 챙긴다. 그 모습을 본 동료 젊은 직원이 필요도 없는 그 물건을 뭐하러 챙기냐며 묻는다. 그는 "손수건은 상대방에게 빌려주기 위한 겁니다. 여자의 눈물 닦아주기 위해서죠."라고 말한다.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오며, 나에게 "다시 손수건을 챙길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말야."라고 물었다. 누군가의 눈물이 될 수도 있고, 젖은 손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눈물을 흘릴 일이 줄게 되면서 손수건은 다시금 서랍장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서랍장에 있는 손수건을 집어 들어 곱게 접어 내 가죽 가방에 넣었다. 나의 아픔을 닦아 주던 손수건이 누군가의 무언가를 닦아줄 수 있을까?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가방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보며 어디에 사용할지 상상해 본다.

  물론 겨울이라 아이 코 풀 때 많이 사용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내가 업무를  배정받지 않은 것은 그 전날 전화를 준 선배가 술자리에서 학교 어른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었다고 한다. 내가 선배의 전화를 받고 완고하게 괜찮다고 하니,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 선배는 그날 저녁 어른들과 저녁 겸 술을 들면서 나의 업무를 본인이 다 가져갈 테니 나에게는 업무를 주지 말라고 눈물에 무릎까지 꿇었던 것이다. 결코 내가 인생을 잘 산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다는 게 그저 감사했고, 지금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검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