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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Nov 14. 2015

건강검진

위염과 식도염은 그렇다 치고 몹쓸병에 심장까지 크면 될 일인가?

<일기와 수필 사이>


  나의 어머니는 참 작으시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서 아마 제일 작지 싶다. 그런 어머니가 날 낳으셨다. 내가 큰 키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남자 평균 키를 조금 넘는 걸 감안한다면 우리 어머니는 자신보다 엄청 클 녀석을  뱃속에 데리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난 태어나서 자주 아팠다고 들었다. 심지어 심하게 아파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적도 꽤 있었고, 한 번은 심한 탈수 증상으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사실 링거 한 병만 제대로 맞으면 되었는데, 그 링거 바늘을 꽂기만 하면 혈관이 터지는 바람에 팔, 머리, 발 곳곳이 바늘 자국이었다고 하셨다. 결국에 그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김칠용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서야 링거 한 병을 온전히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들었다.  어릴 적에는 이런 일들이 왕왕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어느 정도 커서는 건강으로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린 일이 없었다. 건강부터 공부, 연애, 교우관계, 운동, 신앙생활까지 그럭저럭 괜찮았다. 엄친아는 절대 아니지만, 부모님을  걱정시킬 만큼 못난 아들은 아닌 셈이었다. 아마 부모님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아들을 걱정하시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건강하다가 3년 전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몸쓸병 진단을 받고 나니,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든 사자성어가 바로 "설상가상"이구나 싶었다. 아내의 시한부 선고 그리고 몇 달 뒤 나의 몸쓸병. 지독하게 슬픈 영화 한편을 아내와 내가 찍고 있는듯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세상에는 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아프고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나의 결혼사나 건강사로 세상- 나에겐 세상이 하나님일 테고, 다른 이에게는 그 대상이 다를 테다. 여하튼 나는 세상을 원망하는 일이 꽤 줄게 되었다. 삶이라는 거대한 존재-나에게는 그 존재가 하나님이고 난 그분- 앞에서 겸허해졌다고 하면 맞을듯싶다. 그렇게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낮아지고 나니 오히려 인생이 살만해졌다. 

  더군다나 시간이 흘러 아내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난 꽤 즐겁게 산다. 그래서 사랑하는 내 딸 옆에 아주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다. 녀석이 나중에 시집을 가서 아이를 놓으면 할애비 노릇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머리가 벗겨지고 수염이 희긋희긋해지면 페어아일 니트-이게 보기에는 꽤 예쁜데 입으면 항상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서 입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약간은 복덕방 할아버지 같은 옷-을 입고 손녀 손자에게 책을 읽어주고 스파게티를 맛있게 만들어 주고 싶다. 물론 백년 손님이라는 사위님께 간곡히 간청을 드려야겠지만 말이다. 이왕지사 허락을 받는다면 녀석들 근처에 살고 싶은데 딸이 허락해줄지 모르겠다.



  딸의 허락을 받는 것, 사위님께 간청을 하는 것, 페어아일 니트를 입고 손주 녀석들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는 것 모두 내가 건강해야지 가능한 일이니 무조건 난 건강하고 봐야 한다.


  건강하려고 시작한 건지 인생을 즐기려고 시작한 건지는 몰라도 마침 운동을 하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처음엔 1km를 뛰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내 3km에서 5km 그리고 10km까지 뛸 수 있게 되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지 확인은 어렵다. 측정도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고 알려져있다. 러너스 하이-때문인지는 모르지만 10km 뛰는 것도 전혀 힘들지가 않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왠지 모를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병원에 혈압측정기가 있으면 수시로 검사를 해 보았다. 혈압은 정상이고 2년 전 93이던 분당 심박수는 57로 내려왔다. 심장이 튼튼해져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을 갈 때는 걱정보단 살짝 기대마저 하였다.

  건강검진을 받는 당일, 당연히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했다. 2달 전부터는 거의 매일 뛰다 보니 딱히 안 뛸 이유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기 싫은 병원 옷으로 갈아입고 건강검진을 시작했다. 2년 전과는 달리 그다지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건강검진을 받았다. 마치 공부 열심히 하고 시험을 치는 그런 기분으로 말이다. 

  그런데 젠장. 

  내시경과 심장초음파 결과를 듣는데, 의사가 심장이 남보다 좀 크다는 게 아닌가? 위염과 식도염은 흔하니깐 넘어가지만, 몸쓸병-섣불리 밝히고 싶지 않은 그런 병이 하나 있다. 물론 난 다행히 잘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병은 병이라서 걱정이 된다. 그러니 거기-에 심장까지 크면 될 일인가? 의사는 6개월 뒤에도 여전히 크다면 약을 먹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달리기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게 후회가 되었다. 만약 말을 했다면 진단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집에 돌아와서 영 기분이 찝찝했지만, 결과지를 받을 때까지는 알 수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또 젠장. 

  건강검진 결과지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더 충격을 받았다. 운동을 하지 않던 2년 전 보다 운동을 하는 지금이 각종 검사 결과 더 엉망이란다. 물론 뒤에는 <과로 및 운동으로 인해서도 이러한 증상이 나올 수 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날 아침에 뛰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뛰었다. 미꾸라지 같은 그 "나올 수 있다."라는 말이 약간의 안도감을 주긴 했지만, 한동안 찝찝했다. 하지만 결과지를 꼼꼼하게 분석한 결과, 난 "나올 수 있다"를 "운동으로 인해 나왔다."로 결론 지어버렸다. 물론 섣부른 나의 의학적 판단은 나에게 득이 될 게 하나 없다. 그럼에도 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그런 판단을 했다. 

 사실 아내를 간병하며 그녀를 반드시 살려보겠다고 읽은 의료 관련 서적이 백여 권이었다. 언젠가는 버릴 거라고 뒷베란다에 쌓아두고 있는데 현대 희학이며 자연의학이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어느 의학도 완벽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어느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체험했다. 그래서 심장이 크다는 그 의사의 진단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과지를 가지고 구글링을 시작했다. 며칠에 이은 구글링으로  달리는 의사(의사 마라톤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와 아주 유사한 증상-좌심실 비대, 서맥-인 사람들에 대한 글과 의사의 조언을 읽게 되었다. 결론은 심장에 무리가 없다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우울하게 지내다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다음 주에는 새로운 러닝화를 사기 위해 아식스 매장을 가볼까 싶다. 이왕 시작한 달리기, 마라톤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즐겁게 뛰고 싶다. 더 이상의 시련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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