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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Dec 10. 2015

붕어빵

화려하고 빛나는 사람보다 수수하지만 늘 내 옆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

  <일기와 수필 사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 붕어빵집이 생겼다. 그걸 알게 된 건, 퇴근 후 아이랑 집으로 가는데, 어디선가 아주 달짝지근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기 때문이었다. 아이랑 그 달콤한 향을 따라 걸어갔더니 붕어빵 포장마차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아이는 붕어빵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붕어빵을 사주려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전에 회식을 가서 식당의 음식이 너무 맛있으면 직원들 몰래 음식을 포장하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갈 때, 아내가 먹고 좋아할 것을 생각했던 그 흥분이 붕어빵을 통해서 느껴졌다.

  그런데 붕어빵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십여분이 지나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붕어빵 굽는 속도가 느린 탓도 있었지만, 붕어빵을 사겠다고 줄을 서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결국 아이와 함께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다시 아이와 함께 붕어빵집으로 향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텔레비전에 등장한 맛집도 아닌데 붕어빵 하나 먹겠다고 줄을 서야 되나 싶었지만, 반드시 아이에게 붕어빵을 사주겠다는 신념으로 이십여분을 기다려 붕어빵 3000원 치를 샀다.

  붕어빵을 처음 먹어본 아이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팥이 들어간 건 나에게 넘기고 슈크림 붕어빵 2개를 자기 앞으로 당겨놓고 다 먹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내가 뭘 맛있게 먹고 있으면, "농부는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 부르고, 부모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말씀하시며 본인이 드시던 걸 나에게 주곤 하셨다. 결국 나 역시 내 앞에 있던 슈크림 붕어빵 두어 개랑 팥 붕어빵 꼬리를 잘라서 녀석에게 주었다.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다.  

  "아빠, 다음에도 붕어빵 사 주세요."라고 하며 붕어빵을 처음 먹어본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부터 녀석은 나에게 "아빠, 집에 가서 저녁밥 다 먹을게요. 붕어빵 사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아빠, 겨울엔 붕어빵이 최고야, 추우니깐 따뜻한 붕어빵 먹으면 하나도 춥지 않아."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먹을게 많아진 요즘 붕어빵이라는 간식은 그저 시시하게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제과점에 가면 달달한 마카롱, 바삭한 쿠키 그리고 바다 건너온 과자까지 온갖 주전부리가 나와 아이의 입맛을 당기게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부녀에게 가장 맛있는 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앞에 있는 붕어빵이다. 언제나 사 먹을 수 있는 붕어빵.


  사실 붕어빵 하나에 이리 환장을 하는 건 우리 부녀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추측컨데,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아파트는 입지와 세대수가 애매하다. 다 합쳐 600세대 정도이고 북쪽으로는 왕복 10차선의 대도로가 나있고, 남쪽으로는 논두렁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는 산들이 병풍을 치고 있다. 그 위치가 대도심과 시골의 경제선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러한 점에 매료되어 이사를 왔다. 봄에는 거름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워주고, 여름에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잠을 잘 수 있고,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산과 황금들녘을 베란다에서 볼 수 있으며, 겨울에 눈이라도 오게 되면 백설이 뒤덮인 논두렁과 산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다.  

  6년 전쯤 신혼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서 시작했는데, 산책을 하기 위해 이 곳 논두렁길을 자주 찾았었다. 그리고 아내는 직장을 가기 위해 지름길인 이 곳을 자주 애용하였다. 6월쯤이 되면, 논에 물을 가득 채우는데, 아내랑 물이 참방참방 거리는 논 사이의 논두렁길을 앞서니뒷서니 걸으며 주말을 보냈다. 한번은 논두렁길에서 아내가 "여보, 저기 보이는 아파트 마음에 들어. 우리가 걷는 이 논두렁길을 그대로 다 볼 수 있겠지? 나중에 애기랑 걸어 다녀도 재미있을 것 같아. 우리 돈 열심히 벌어서 저리로 이사 가자."라고 했었다. 그래서 우린 열심히 돈을 벌었고, 결국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다. 물론 이사를 오고 아내는 먼저 멀리 가버렸지만.

  그런데 세상만사[世上萬事]가 모두 그러하듯, 일장일단[一長一短]이라 이 곳에 살며 좋은 점만 있진 않다. 당연히 불편한 점이 있다. 바로 입지의 애매함인데 처음엔 그게 장점이었다. 베란다에서 자연을 볼 수 있고 집에서 빠르게 걸어가면 지하철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고 이 보다 좋은 입지가 어디 있나 싶었는데 그게 가끔은 단점이 된다. 언제냐면, 바로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이다. 우리 동네에는 슈퍼마켓 1개, 미용실 2개, 공인중개소 2개, 찻집 1개, 분식집 1개, 메밀 국숫집 1개, 피아노 학원 1개정도이다.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으면 의레 있는 프랑스산 바게트 가게, 대구백화점 출신 마트, 다음에 봐요 24시간 편의점 하나가 없다.

  빵이 먹고 싶으면 10분을 걸어야 하니 그냥 먹는 걸 포기하게 된다. 돈을 쓰지 않아 좋을 것 같지만 결국 다음에 마트에 가서 왕창 사서 집으로 오게 된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 앞 벤치에서 맥주 한 캔을 따고 싶어도 좋아하는 브랜드 맥주가 슈퍼에 없어서 마트에 가서 미리 사놓아야 한다. 물론 일장일단의 반복으로 단점은 장점을 가져온다. 바로 계획적으로 미리 사놓게 된다는 것이고, 한편으론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즉흥적인 즐거움이 전혀 없다는 거다.

  그런데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는 모르나, 아마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질 거다. 그래서 붕어빵집이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그 주고객은 우리 동네 사람들일 테다. 최근에 붕어빵집 주인이 아주머니에서 아저씨로 바뀌었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어묵, 핫도그, 꼬지를 파는 포장마차 한대가 붕어빵집 옆에 떡하니 오픈을 하였다. 이러다 맛집 노점상이 줄줄이 드러 서지는 않을까라고 헛된 상상을 한번 해보았지만, 경제논리상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상상만 했다.

  부디 붕어빵집 장사가 잘 되어서 아저씨가 돈을 많이 버시고, 우리 부녀는 맛난 붕어빵을 가까운 곳에서 자주 먹을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붕어빵 보다 맛있는 간식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 부녀의 욕구를 즉시 충족시켜주는 건 지금 붕어빵이다.


  사람도 그렇다. 언제나 내가 부르면 뒤돌아서 "응."이라면 대답해 주는 사람이 더 좋다. 화려하고 빛나는 사람보다 수수하지만 늘 내 옆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 내 아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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