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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Oct 14. 2015

그때 그 여자는 누굴까?

청바지에 흰 스웨트가 잘 어울리는 청순한 여자일 거라고 가슴에 묻어두자!

<일기와 수필사이>


  '누굴까?'

  대학교 2학년, 4월 한 달간 문자가 왔었다. 문자는 연정을 곱게 담은 시와 나를 연모한다는 내용이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이틀에 한 번씩 왔었고, 밤마다 문자를 읽는 게 즐거웠다. 처음엔 혼자 보았지만 내용이 마음에 걸려 여자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왠 걸 이 여자가 긴장은커녕 남자들의 소행인지 알 수 없다며 좋아하지 말라고 했었다.  마음속으론 긴장하면서 괜히 그런다고 생각했었다. 십 수년이 지나서 이젠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나에게 문자를 보낸 여자는 누구였을까?


  '몰랐으면 좋았을 걸!'

  결혼을 하고 1정 자격 연수에 들어갔다. 180시간의 장기간 연수라 들어가기 싫었다. 대신에 간혹 남녀 간의 애정이 싹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그런 기대 따윈 품을 수 없는 유부남이었다. 그래서 그 연수는 의미 없는 180시간의-연수 강사의 자랑을 들어야 하는-감금과 같았다. 그런데 왠 걸, 기대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었다. 점심 식사 후, 내 책상 위에 쪽지가 있는 게 아닌가? 쪽지엔 관심이 있으니 따로 보자는 여자의 글씨체와 연락처가 있었다. 누가 날 지켜볼까 봐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난 아무 일도 없는 듯 조용히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강사의 자랑이 더 이상 듣기지 않았다. '연락을 해 말아? 연락해서 뭐라고 말해? 나 결혼했다고 다음달에 아이 태어난다고 할까?' 쪽지 한 장에 기분은 좋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어떤 여자일까 궁금했지만 더 알고 싶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온다고 종이비행기를 마구 날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연수가 끝나고 쪽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뽐내며 자랑을 했다. 쪽지 사건은 그렇게 즐거운 해프닝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연수를 듣는데 친구 녀석이 와서 장난쳐서 미안하다고 했다. 화가 나기 보단 전화를 안 하길 잘 했고 쓰레기통에 쪽지를 버린 내가 자랑스러웠다. 물론 집에 가서 아내에게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 어찌나 배를 잡고 웃는지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다 웃고는 내 어깨를 톡톡 치며, "흔들리지 않는 우리 남편 멋져요!"라고 해 주었다. 아내  가슴속에 든든한 상록수 한그루 심어준 것 같아 기뻤다. 기쁜 마음에 친구 녀석은 용서해 주었다.


  '몰라도 상관없어.'

  어제저녁, 모바일로 메일 계정 보안 메시지를 받았다. 누군가 나의 거주 지역이 아닌 곳에서 내 계정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 친구에게 물어봤다. 친구는 자신의 계정으로 누군가 각종 인터넷 카페에 음란물을 게시하는 바람에 아이디 정지를 받으 적이 있다고 했다. 여자가 음란물을 올릴 일이 거의 없으니 분명 아이디 도용이 맞을 테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참 별의 별이 다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어제와 같은 보안계정 메시지가 또 와있었다. "Jinan, China"에서 내 계정에 접근을 시도했다는데 본인이 맞냐는 것이다. "이런, 젠장" 순간 짜증이 났다. 도대체 내 아이디로 뭘 하려고 바다 건너 중국에서 해킹을 시도한다는 말인가! 내게 중국은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전부였다. 지난이라... 위치라도 알아볼까 싶어 검색포탈에서 중국 지난시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정보가 있었지만 클릭하지 않고 훑어만 봤다. 그 이상은 궁금하지 않았다. 뻔히 속내가 보이는 행동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비밀번호를 기똥차게 변경했다.


  난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걸 참지 못한다. 궁금한 게 생기면 누구에게나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해답이 잘 안 보이면 끝없는 고민도 마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며 때로는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게-심지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문마저 잊는 게- 훨씬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다. 때로는 모르는 건 그대로 묻어둘 필요가 있다. 

   근데  그때 그 여자는 누굴까? 청바지에 흰 스웨트가 잘 어울리는 청순한 여자일 거라고 가슴에 묻어두자! 남자후배만 아니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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